김기태 감독은 왜 스스로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 있는 기준을 공표했을까.
5일 LG 구단의 시무식에서 김기태 신임감독은 "올해 목표는 60패다. 승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60패만 하자"고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상당히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이날 낮부터 이같은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중요한 건 '한시즌 60패' 발언이 김기태 감독에겐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역으로 말하면 무승부가 없을 경우 73승60패를 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목표를 이룰 경우엔 큰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건, 곧 시즌 중후반부에 가서 60패를 기록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 경우가 문제다. 요즘 야구팬들은 몇년전 '어록'까지 찾아내 현 상황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LG의 팀성적이 60패에 다가갈수록 시무식때 나온 발언이 또다시 화제가 될 것이다. 4강 경쟁에서 멀어진 채 60패를 돌파한다면, 그 순간 실망감에서 비롯된 비난 여론이 들끓을 수 있다.
김기태 감독이 이같은 케이스를 생각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주저없이 말했다. 나중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4강에 가도록 합시다"라고 적당히 말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강팀을 맡고 있는 감독이라도 신년사에서 한해 목표를 명확하게 구체적인 수치로 밝히는 일은 드물다. 대체로 "OO승을 하면 4강에 갈 수 있지 않을까", "1위를 하려면 OO승 이상은 해야할 것"이라는 식으로 우회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대부분은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더 나아지겠다는 목표를 제시한다.
딱 부러지는 수치를 명시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감독들이 "다 계산된 일이었다"고 말하는 건 대개 이튿날, 혹은 결과물이 나온 뒤의 시점이다. 결과론에 지배당하는 대표적인 스포츠인 야구에서, 사전 목표 제시는 버거운 일이다. 지난해 두산의 사례처럼, 성적 하락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난다.
LG는 최근 4시즌 동안 평균 74.5패를 기록했다. 올해는 이택근 조인성 송신영 등 FA 이탈 선수들로 인해 전력마저 약화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기태 감독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본래 화끈한 스타일이다. 미적미적 돌려말하는 걸 싫어한다. 감독은 어차피 4강 진출에 실패하면 비난을 받는다. 머뭇머뭇하다가 비난받든, 깃발 들고 앞장서다 욕을 먹든, 사실 똑같다. 김기태 감독은 자신의 평소 스타일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선수들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화끈한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김기태 감독이 승보다 패를 타깃으로 삼은 건 일종의 역발상이다. LG 선수들은 최근 9년간 "OO승을 해야 4강에 갈 수 있다. OO승 이상은 무조건 해야 한다. 그러니 잘해라"는 조언, 충고, 압박, 격려, 염려 등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결국엔 같은 얘기겠지만 "60패만 하자"는 건 일단 더 신선하게 들린다.
타깃을 놓고 침착하게 조준한 뒤 심호흡까지 하고 격발하는 스타일의 지도자도 있다. 반면 김기태 감독은 처음부터 러시안룰렛을 선택했다. 최종 결과는 10개월후에 나오겠지만, 일단 흥미롭다. 프로야구에서 가장 젊은 감독이다. 패기가 느껴진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