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들에겐 '행운'과 '불운'이 동시에 겹쳤다.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여러 경쟁자들을 제치고 후보에 오른 것은 '행운', 다른 때 같았으면 충분히 트로피를 받았을 법한 연기임에도 결국 다섯 후보 중 4명은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불운'이다. 그만큼 어느 해보다 후보들이 막강하다는 얘기다. 고수, 공유, 김윤석, 박해일, 윤계상 중 대체 누가 수상하게 될까. 생각을 거듭해봐도 트로피의 향방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젊은피 VS 관록
올해 남우주연상은 '젊은 피의 도전'과 '관록의 응전'에 관전 포인트를 맞춰도 좋을 듯하다. 과거엔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는 청춘스타로 분류됐으나 이제는 명실상부한 충무로 대표주자가 된 '젊은 피' 고수, 공유, 윤계상과 연극무대에서 쌓은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스크린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관록'의 배우 김윤석, 박해일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박 터지는' 경쟁이다.
2000년 시트콤 '논스톱'을 시작으로 '피아노'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등 여러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 역을 도맡았던 고수는 '고지전'에서 꽃미남의 얼굴을 버리고 연기로 정면 승부를 펼쳤다. 드라마 '학교' 시리즈가 배출한 청춘스타 중 한명인 공유도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여심을 흔들더니 '도가니'에서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 아이돌가수였다는 사실이 어색할 정도인 윤계상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노개런티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풍산개'가 대표적이다. 이들 '젊은 피' 3인방은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깨뜨리면서 한 단계씩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김윤석은 10여년간 '지하철 1호선' '의형제' 등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누비다가 2004년 뒤늦게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무시무시한 내공으로 단박에 충무로 대표배우가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인 셈. 박해일도 연극 '청춘예찬'에서의 연기를 인상깊게 본 임순례, 봉준호 감독이 자신들의 영화에 캐스팅하면서 스크린으로 넘어왔다. '살인의 추억' '괴물' '이끼' '최종병기 활'까지, 알고 보면 흥행보증수표다.
▶액션 카리스마 VS 감정 연기
올해 남자배우들은 영화에서 '몸 고생'과 '마음 고생'이 심했다. 어느 영화가 안 그렇겠냐마는 올해는 그 강도가 유독 세다. 저마다 비장의 무기를 들고 새로운 액션을 개척하거나, 아니면 '진심'이라는 최고의 무기로 영화의 힘을 배가시켰다. 시상식을 지켜볼 영화팬들은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골라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응원을 보내면 되겠다.
'고지전'에서 최전방의 전쟁터를 누빈 고수는 선한 눈빛과 냉혹한 카리스마라는 양극단의 모습으로 전쟁이 남긴 상흔을 표현했고, '풍산개'의 윤계상도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정체불명의 배달부가 되어 대사 한마디 없이 눈빛과 몸짓만으로 야성적 매력을 발산했다. 장대를 이용해 휴전선 철조망을 넘는 모습은 그 어떤 액션보다 스펙타클했다. 김윤석도 '황해'에서 육중하고 호쾌한 액션을 펼쳤다. 냉혹한 조선족 살인청부업자 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족발로 사람을 때려잡는 명장면을 영화팬들의 뇌리에 새겼다. 신개념 '활 액션'을 개척한 '최종병기 활'의 박해일은 숨막히는 속도감과 긴장감을 책임지며 745만 관객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반면 공유는 몸 고생은 덜한 대신 마음 고생이 남달랐다. 청각장애 아이들에게 성폭행을 가한 교직원과 이들을 비호하는 권력에 맞서며, 고요한 얼굴 안에 무력함과 좌절감, 그리고 희망을 동시에 표현했다. 아역배우들과의 섬세한 호흡도 돋보였다.
누가 트로피를 안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박해일 2관왕이냐, 의외의 주인공이냐
올해 시상식 성적표만 보면, '최종병기 활'로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박해일이 앞서 있다. 영화를 고르는 데 남다른 혜안이 있는 박해일은 대중성과 작품성 둘 다 지닌 몇 안 되는 배우다. 하지만 유독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룡영화상에서도 2005년 '연애의 목적' 이후 6년만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번만큼은 오랜 갈증을 풀어낼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청룡영화상과는 김윤석의 인연이 더 깊다.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가 이번이 벌써 세번째, 2008년에는 '추격자'로 트로피를 가져가기도 했다. 청룡영화상의 긴장감과 수상의 짜릿한 맛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을 테다.
올해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고수, 공유 윤계상도 '돌풍'을 일으킬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냉정하리 만큼 공정성을 지향하는 청룡영화상에선 항상 의외의 수상 결과들이 나오곤 했다. 올해는 더더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세 사람 모두 끝까지 욕심을 내도 될 만하다.
박해일의 2관왕이냐, 의외의 주인공 탄생이냐. 어느 쪽이든 남우주연상은 한 편의 역전 드라마로 결론 지어질 거란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