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조광래호는 'K-리거들의 무덤'이었다.
11명 주전 멤버 중 정성룡 이용래 홍정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포지션이 해외파로 구성됐다. 잊혀진 K-리거들이 늘어났다. 테스트만 받다 돌아갔거나,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선수들이 숱하다.
이승기(23·광주FC)는 달랐다. 26분 만에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의 눈을 확실하게 사로잡았다. 11일 아랍에미리트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4차전(2대0 승)에서 후반 19분 교체투입돼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의 입에서 극찬을 이끌어낸 당당한 K-리거다. 조 감독은 훈련 과정에서 이승기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봤다. 축구지능이 뛰어나고, 강력한 양발 슈팅 능력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또 안정된 경기조율도 높게 샀다.
성실함과 꾸준함은 이승기의 무기다. 고질적인 발목 부상과 에이전트 문제로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냈지만 프로에서 한을 풀었다. 올시즌 프로에 첫 발을 내디딘 신인임에도 자신이 뽐낸 기량은 해외파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바로 조 감독이 바라는 'K-리거상'이었다.
'조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다는 점도 조 감독을 웃게 한다. 이승기는 지난 9월 A대표팀에 발탁될 때부터 현실을 직시했다. "광주에서는 주축으로 활약할 수 있는데 대표팀에서는 아무래도 서브 느낌이 든다.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실망하진 않을 것이다." 1분을 위해 준비했다. 생각을 바꿨다.
타이밍은 잘 들어맞았다. 해외파들이 부진을 겪었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승기 카드는 딱 들어맞았다.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조커' 안정환을 '5단 기어'라고 비유한 것처럼 이승기도 그런 역할을 했다.
이승기는 15일 레바논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는 '캡틴' 박주영(AS모나코)을 대신해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설 전망이다. '이승기 시프트'는 레바논전 승리를 부르는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