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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김기동' 500경기 출전, 무산될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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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기동 선수는 뜁니다. 다만 얼마를 뛸 것인가는 경기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요."

22일 포항스틸야드. 전남과의 홈경기를 앞둔 황선홍 포항 감독은 '김기동 출전'을 약속했다. 김기동(39)은 선발이 아닌 후보 명단에 있었다. 감독이 경기 시작전 출전을 약속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특별한 날이었다. 김기동이 이날 나선다면 500경기에 출전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경남 골키퍼 김병지(41·567경기 출전)에 이어 두번째다. K-리그 필드플레이어 최초다. 1991년 포항 입단 후 21시즌만에 일구어낸 대기록이었다. 축하준비도 마쳤다. 포항 구단은 경기 프로그램 책자 표지에 김기동을 올렸다. 뒤에는 대형 브로마이드도 있었다. 경기장 곳곳에 김기동의 500경기 출전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도 붙었다. 구단과 선수단은 황금발과 공모양의 트로피도 제작했다. 기념티셔츠도 배포됐다.

원래 계획은 선발출전이었다. 울산과의 28라운드 원정경기에서 2위를 확정지을 태세였다. 울산전 승리로 2위 확정한 뒤 열리는 전남전에서 김기동을 선발로 뛰게하려 했다. 하지만 울산전에서 1대2로 지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황 감독도 김기동 출전을 약속했지만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줄 수 없었다. 앞서 나간채 전반을 마치면 하프타임에 교체출전도 고려했다. 선발 출전 선수들이 여유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쉽지 않았다. 후반 8분 전남 이종호에게 골을 내주었다. 6강 진출을 위해 승리가 절실했던 전남은 밀집 수비에 돌입했다. 수비는 강력했다. 황 감독은 노병준과 조찬호를 번갈아 투입했다. 골을 노렸지만 전남의 골문은 단단했다. 2위 확정까지 무승부만 하면 되는 포항이었다. 선수들도 베테랑의 500경기 출전 선물로 2위와 내년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주고 싶었다. 후반 37분 황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김기동을 투입했다. 출전 준비하는 김기동의 어깨를 감싸면서 "너의 공격 능력을 믿는다. 섀도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공격을 조율해라"라고 주문했다. 김기동은 아사모아와 교체되어 경기장에 들어섰다. 1만여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영웅을 환영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1991년 포항 입단 후 2시즌 동안 1군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었다. 연습생이었다. 다들 김기동의 미래에 회의적이었다. 체격조건도 좋지 않았다. 체력도 약했다. 2년간 이를 악물었다. 김기동은 체력만이 살길이라고 믿었다. 체력 증진에 매진했다. 2년 후 포항에서 체력왕이 됐다. 1993년 연습생 김기동을 주목하던 박성화 유공(현 제주) 감독이 데려왔다 유공에서 첫 경기에 나섰다. 2002년까지 유공(부천)에서 10시즌동안 뛰었다. K-리그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31세가 되던 2003년 친정팀 포항으로 돌아왔다. 포항의 전성시대를 열었다2007년 K-리그, 2008년 FA컵, 2009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김기동은 "첫 우승을 경험한 2007년이 최고의 시기다"라고 회상했다. 2010년 2군으로 내려가며 위기도 맞이했다. 시즌 후반 1군으로 올라왔지만 은퇴의 기로에 섰다. 올 시즌 연봉이 깎이면서도 선수단에 남았다. 500경기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베테랑에 등장에 포항 선수들은 힘을 냈다. 동점골을 위해 뛰고 또 뛰었다. 후반 44분 고무열이 올린 크로스가 모따의 머리를 스치면서 골로 연결됐다. 1대1을 기록하며 2위로 내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500경기 출전(39골-40도움)을 달성한 김기동은 "편겨다음 목표로 K-리그 우승을 얘기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원래는 500경기 하고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시즌 중이다. 은퇴라는 얘기는 조심스럽다. K-리그 챔피언십이 남아있다. 팀에 우승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500경기라는 큰 꿈을 현실로 만든 '철인'의 전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포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