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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1 인터뷰]이을용 "을용타, 온 국민에 웃음 준 것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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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이을용(36·강원)은 일명 '을용타'로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탔다. 2003년 12월 7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중국전에서 상대 선수의 뒤통수를 가격해 퇴장 당했다. 당시 중국이 자국 영토 내에서 벌어진 역사는 모두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한 동북공정 문제로 한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을용은 일약 국민영웅이 됐다. 이을용은 "인터넷에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안다. 그래도 나 한 명 때문에 온 국민이 즐거웠다면 좋은 것 아닌가. 아마 내 인생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때였을 것"이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옆집 형님 같은 푸근함과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을용이 현역생활을 마감한다. 은사인 세뇰 귀네슈 트라브존스포르 감독(터키)이 일찌감치 지도자 연수를 돕겠다는 의사를 드러내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23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릴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9라운드 대구FC전은 이을용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지켜볼 마지막 기회다.

-2002년 월드컵 때 함께 뛴게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은퇴가 아쉽지만 멋진 지도자가 되리라 믿어요. 축구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설기현·32·울산)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그라운드에서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그래서 은퇴하고 난 뒤 우울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웃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나저나 내가 너보고 강원도에 올 때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빨리 고향(설기현의 고향은 강릉)으로 돌아와서 나처럼 봉사 좀 해야지?

-대표팀에서 처음 본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은퇴한다니 감회가 새롭구나.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을 했니? (허정무 인천 감독·56)

▶강원에서 힘든 일을 수 차례 겪었어요. 그럴 때는 낚시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힘들었던 옛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스스로 게을러지지 않았나 채찍질을 하다 보면 다시 좋아지는 시기가 오더라구요.

-20대 초반에 축구를 그만두셨다가 다시 돌아오신 걸로 아는데 무슨 계기가 있으셨나요? 복귀하는데 누구의 힘이 가장 컸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김치곤·28·상주)

▶축구를 관둔답시고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할 때였지. 그런데 갑자기 고교 은사께서 들이닥치더니 나를 잡아갔었다(웃음). 그 이후에 정신차리고 한국철도에 입단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당시 경험이 축구를 좋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아.

-해외진출 첫 무대로 터키를 선택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김두현·29·경찰청)

▶사실 그 때는 터키리그 자체가 생소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터키리그를 인정하고 있더라. 당시가 월드컵 직후였는데 내가 테이프를 끊지 않으면 후배들도 해외 진출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이후에 (이)영표 (박)지성이가 줄줄이 유럽으로 나갔으니 나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형은 카리스마가 있어서 지도자로 전향하면 하면 잘 할 것 같아요. 터키로 지도자 연수 간다고 들었는데, 제가 있는 프랑스로 오실 생각은 없어요? (정조국·27·낭시)

▶저번에도 연락했지만 시간 내서 꼭 네 경기 보러 갈게. 터키 뿐만 아니라 영국 스페인도 둘러볼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프랑스의 시스템도 둘러보고. 중간에 너희 팀에 좋은 자리가 나면 소개 시켜주든가(웃음).

-귀네슈 감독님과 함께 한다고 하니 부러운 마음이다. 많은 것을 배워서 훌륭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런데 귀네슈 감독님이 너하고 나 중에 누굴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최용수 FC서울 감독대행·38)

▶이건 아들 딸 중에 누가 좋냐고 물어보는 거랑 다른게 없는 거 같은데요(웃음). 감독님도 아시겠지만 귀네슈 감독님 스타일이 제자들을 안 가리시잖아요. 그래도 제가 가겠다니 마다하지 않으시는거 보니 저를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요? (웃음)

-그동안 수고했다, 친구야. 그런데 은퇴를 하는 마당에 한 번 물어보자. 많이 벌었지. 너 통장에 얼마 있니? (안정환·35·다롄 스더·대표팀 시절부터 스스럼 없이 지내는 절친)

▶정환아. 너는 꼭 시즌 끝날 때만 연락을 하더니 끝까지 이상한 것을 물어 보는구나. 왜 그러니?(웃음). 내가 벌어봤자 너보다 많이 벌었겠니? 그러는 너는 얼마나 벌었냐?

-큰 아들이 축구를 하고 있잖아요. 만약 축구선수로 계속 큰다면 형과 만나겠죠. 그때 어떤 선수와 감독으로 만나고 싶나요? (김영후·28·강원)

▶네가 요즘 아빠가 되더니 아이에 대해 참 관심이 많구나(김영후는 최근 득녀). 내 아들 자랑 같아서 이야기 하기는 싫은데…. (뜸을 들이더니) 어느정도 축구선수 피는 타고난 것 같아(웃음). 왼발도 쓰고. 코치님들이 잘 하니 키워보자 이야기 많이 하더라. 하지만 내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힘들 것 같아. 답답하지 않겠니? 다른 코치에게 맡길 생각이야.

-중국전 을용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때리신 거에요? (김진규·26·반포레 고후)

▶허허. 그 때 내가 발목이 좀 아팠다. 그런데 그 선수(리 이)가 아픈 곳을 두 번이나 차더라고. 결국 마지막에 아픈 발목을 접질러버렸지. 나도 모르게 욱하게 되서 그대로 뒤통수를 때렸다. 상상도 못할 일이지(웃음)

-중국전에서 '을용타'를 날렸을 때의 심정은. 당시 그 중국 선수를 향해 뭐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뭐라고 했니. 또 을용타가 그 당시 한국 승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니?(최강희 전북 감독·52·당시 A대표팀 코치)

▶사실 제가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욕 밖에 할 말이 없었죠(웃음). 그때 감독님이 제게 경기 뒤에 '우승 못하면 네가 역적'이라고 하셔서 걱정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중국전을 이기고 결국 그 대회서 우승해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릉=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