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에 불문율이 존재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유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한계였다. 무대가 거칠어 경쟁력이 떨어졌다. 체력조건이 뛰어난 선수들도 즐비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후 김남일(34)이 네덜란드 엑셀시오르로 5개월간 임대됐다. 끈을 잇지 못했다. K-리그와 J-리그를 거쳐 현재 톰 톰스크에서 활약 중이지만 러시아는 유럽 축구의 변방이다.
조원희(28)는 2009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에 둥지를 틀었다. 5경기 출전에 그쳤다. 1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그는 이장수 감독이 지휘하는 광저우 헝다에서 뛰고 있다.
공격과 수비, 양대산맥이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이회택(65)→차범근(58)→최순호(49)→황선홍(43)→최용수(40)→안정환(35)에 이어 박주영(26·아스널)이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측면은 박지성(30·맨유)과 이청용(23·볼턴)이 대세다. 수비의 경우 동시대에 활약한 김정남(68) 김 호(67)에 이어 김호곤(60) 홍명보(42) 등이 그 명맥을 이었다. 중앙 미드필더에는 조광래(57) 허정무(56) 외에는 뚜렷하게 족적을 남긴 인물이 없다.
그는 새로운 물결이다. 한국 축구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기성용(22)이다. 여느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첫 걸음은 눈물이었다. 2009년 8월 K-리그 시즌 도중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행을 확정지었다. K-리그가 끝난 후인 2010년 1월 스코틀랜드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FC서울 시절 스승인 세뇰 귀네슈 터키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이 영입 제의를 했다. 그도 흔들렸다. 우울한 전망이 쏟아졌다.
스코틀랜드에 입성한 지 1년 10개월이 흘렀다. 공격 성향이 강한 반쪽자리 수비형 미드필더는 더 이상 없다. 기성용 시대다. 한국 축구에 색다른 기쁨을 선물하고 있다. 올시즌 그는 13경기에서 4골-3도움을 기록, 고공행진 중이다.
A매치에서는 괄목성장한 현주소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박지성이 은퇴했고, 이청용마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있다. 그는 여전히 엔진을 가동하고 있다. 조광래호에서 기성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정면 충돌로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거친 수비로 상대의 맥을 끊는다. 송곳같은 패스로 좌우, 중앙으로 볼을 뿌린다. 방향전환을 위한 롱패스도 오차가 없다. 세트피스를 전담하면 현란한 슈팅과 킥력도 자랑한다. 1인 3~4역은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
그가 볼을 잡으면 안정감이 넘친다. 11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아랍에미리트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3차전에서도 기성용에게 눈길이 쏠린다.
편견을 깼다. 수비형 미드필더도 유럽에서 통했다. 역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성공시대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빅리그 입성은 시간 문제다. 셀틱은 여름이적시장에서 러브콜이 쇄도하자 제동을 걸 정도다. 기성용은 2014년 1월까지 셀틱과 계약돼 있다. FC서울에서 셀틱으로 이적할 때 그의 몸값은 200파운드(약 37억원)였다. 그의 시장가는 1000만파운드(약 183억원)선으로 무려 800만파운드(약 146억원)가 치솟았다.
1m86, 75㎏인 기성은 2011~2012시즌 후 이적할 것으로 보인다. 22세의 어린 나이에 이룬 발전은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시금석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