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이 감돌았다. 팽팽했다.
FC서울은 알 이티하드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을 마친 후 16일 UAE(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귀국했다. 이동하는 데 약 20시간이 걸렸다. 만신창이였다. 18일 48시간 만에 그라운드에 섰다.
살인적인 일정을 감안, 서울은 두 달 전인 7월 일찌감치 연맹과 원정팀인 부산에 협조 요청을 했다. 경기 일을 하루만 연기해 달라고 했다.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서울은 격앙됐다. 양보없는 부산에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고 했다. 부산은 서울의 발상 자체가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양 감독은 경기 한 시간전 신경전으로 문을 열었다. 안익수 부산 감독은 "이틀이면 충분하다. 피로는 있을 수 있지만 시차는 문제 없을 것이다. 서울의 주전 선수들이 6명 빠졌다고 하지만 우리보다 낫다"고 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대행은 "그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씁쓸하게 웃은 후 "해외 경험이 많은 내가 봤을 때는 중동 원정 후에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고 맞불을 놓았다.
서울은 출혈이 컸다. 베스트 11 중 6명이 없었다. 몰리나 고명진 최현태가 경고누적으로, 하대성 현영민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주장 박용호도 컨디션 난조로 명단에서 빠졌다.
1.5군으로 부산을 맞았다. 안 감독이 먼저 웃었다. 전반 44분 에델이 축포를 터트렸다. 서울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원정 후유증과 주축 선수들의 결장으로 좀처럼 팀 플레이가 살아나지 않았다. 복수의 꿈이 희미해지는 듯 했다. 그 순간 교체카드를 꺼내들었다. 후반 7분 이승렬 대신 강정훈을 투입했다. 분위기가 흔들렸다.
백업 선수들의 투지와 집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올초 친정팀으로 복귀한 김동진의 이름 석자가 번쩍였다. 독일월드컵 대표인 그는 주전경쟁에서 밀려 2군에서 세월을 낚았다. 5월 8일 상주전 이후 4개월 여만의 선발 출전이었다. 후반 18분 문전 혼전과정에서 데얀의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터트리며 부활을 알렸다. 3만3663명이 운집한 상암벌의 분위기가 고조됐다.
후반 44분 또 한번 부산의 골망이 출렁였다. 조커 강정훈의 오른발에서 극적인 결승골이 나왔다. 서울은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5라운드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2대1로 역전승했다.
김동진은 "서울에 다시 입단해 홈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해 감회가 남달랐다. 프로에 입단해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자존심을 지킬려고 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2군에서 훈련하면서 신인의 자세로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희망은 잃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었던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며 감격해 했다.
강정훈도 "경고 누적과 부상으로 전력의 50%가 누수됐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께서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찬스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부족한 점을 채워 앞으로 더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었다.
각본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눈물로 세월을 보낸 백업 선수들이었다. 대반란이었다. 서울은 또 다시 부산의 천적임을 과시했다. 2002년 9월 25일 이후 홈 13경기 연속 무패 행진(10승3무)을 달렸다. 9일 대구(1대2 패), 15일 알 이티하드전(1대3 패)의 2연패 사슬도 끊었다.
최 감독은 "선수들의 투혼과 열정이 하나가 됐다. 우린 이번 경기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웃었다. 서울은 승점 45점(13승6무6패)으로 3위를 유지했다.
한편, 전북은 이동국과 루이스(2골)의 릴레이골을 앞세워 경남을 3대1로 꺾고 4연승을 질주했다. 승점 56점(17승5무3패)으로 사실상 정규리그 1위를 예약했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