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잔디에서는 나머지 예선전을 치르기 어렵다."
조광래 A대표팀 감독(57)이 내달 2일 레바논과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1차전이 열릴 고양종합운동장을 두고 한 말이다. 발언 뒤 이어질 '잔디 핑계를 댄다'는 일부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 한데, 작심하고 할 말을 했다. 그만큼 그라운드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생각이다.
조 감독이 굳이 잔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라운드 사정이 레바논전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패스 축구와 스피드를 강조하는 조광래호 입장에서 고르지 못한 그라운드 사정은 전력 약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빠른 템포와 패스를 가져가기 힘들다. 울퉁불퉁한 그라운드 탓에 선수들이 스피드를 내는데 적잖이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
부상에 대한 위험도 크다. 3차예선의 문을 여는 레바논전부터 부상 선수가 발생하게 되면 전체적인 팀 밸런스가 깨진다. 이미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이 한 차례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더 이상 이탈자가 발생하면 그동안 구상해 온 팀 운영 방안 전면 수정이 불가피 하다.
29일 A대표팀이 훈련을 진행한 고양종합운동장의 그라운드는 파여있던 곳곳의 흔적을 땜질한 흔적이 역력했다. 경기장 관계자들이 특수차까지 동원해 관리에 나서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며칠 사이 최상의 상태를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라운드 조건만큼은 홈 이점을 가져갈 수 있는 요소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게 됐다.
이제와서 경기 장소를 바꿀 수도 없다. 실력과 노력으로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 조 감독이 29일 훈련에서 1시간 30분에 달한 훈련 시간 대부분을 패스 및 움직임에 할애한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이다. 조 감독은 "어차피 이런 상황이라면 좋은 잔디(파주NFC)에서 훈련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 남은 훈련 일정은 여기(고양)서 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30일에는 대학팀과 연습 경기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고르지 못한 그라운드 사정은 오히려 조광래호에게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3차예선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열린다. 1차전에서 맞붙는 레바논을 비롯해 쿠웨이트와 아랍에리미트(UAE)에 한 차례씩 원정을 다녀와야 한다. 이들 3개국 모두 양질의 그라운드를 기대할 수 없는 조건이다. 당장 레바논전을 치른 뒤 7일 쿠웨이트 시티로 이동해 원정 경기를 치르는 일정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대표팀은 동남아시아나 중동 원정을 치를 때마다 그라운드 적응에 애를 먹어야 했다. 심지어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이런 전례에서 보면 원정에 대비한 그라운드 컨디션 적응 측면에서만 보면 레바논전을 치르는 고양종합운동장이 오히려 조광래호에게 '뜻하지 않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