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37년만에 일본에 3점차 대패를 했다. 한국 축구의 '삿포로 치욕'. 이제 숨이 턱턱 막혀오는 산같은 과제만 남았다.
일본 축구의 성장에 한국은 화들짝 놀랐지만 정작 일본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이 한-일전을 앞두고 "일본은 세계수준에 근접해 있다"라는 말이 립서비스가 아니었음이 입증됐다.
여기서 몇 가지 체크해보자. 정말 한국과 일본은 0대3 이라는 스코어 만큼 축구실력이 차이가 나는 것일까. 축구에서 3대0은 궁극적인 완승, 완패 스코어다. 1대0 승리는 승자 입장에서 보면 공격은 100점 만점에 80점, 수비는 100점이다. 2대0 승리는 공격 90점, 수비 100점이다. 3대0 승리는 공격 100점, 수비 100점이다. 그렇다면 4대1 승리는? 공격 100점, 수비 90점 정도가 아닐까.
조광래 감독은 경기후 기자회견에서 "한-일 축구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늘은 일본이 잘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왼쪽 측면 수비수 김영권이 전반에 다치지 않았다면 한국의 중앙 수비라인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을 벗어났다. '~였다면'은 일본 입장에서도 있다. 우치다의 슈팅이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지 않았다면 스코어는 4대0이 됐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가정은 뒤늦은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은 솔직하게 일본 축구의 엄청난 성장과 폭발적인 힘을 인정할 때다. FIFA랭킹도 일본은 16위, 한국은 28위다. 또 '젊은 피'로의 세대교체도 한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은 패스를 통해 공간을 만들고, 상대 압박을 풀어내는 세련된 축구를 수년간 발전시켰다. 한국 축구는 라이벌의 성장 원동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실패는 아프지만 두려워할 존재는 아니다.
애플 신화의 주인공이자 세계 IT계의 거물인 스티브 잡스는 1998년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다. 밥 딜런과 피카소는 언제나 실패의 위험을 감수했다"고 말했다. 예술가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2006년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아스널전에서 패한 뒤 선수들에게 "패배 뒤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는 자만이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2009년 로마세계수영선수권에서의 아픔이 없었다면 '마린 보이' 박태환의 가슴 진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쾌거, 2011년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 400m 금메달은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이다. '아시아 챔피언' 한국 축구는 오늘부로 '도전자'다. 그래야 내일은 챔피언이 될 수 있다. 삿포로=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