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준(30·코오롱)은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약이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허위 금지약물 투여 제보를 한 육상인 앞에서 보란듯이 잘 뛰고 싶었다.
그런데 뛰기만 하면 자꾸 당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통이 지영준의 발목을 잡았다. 치료를 하면서 대표팀과 같이 훈련했다. 하지만 통증이 허벅지 앞뒤 좌우로 돌아가면서 지영준을 괴롭혔다. 그러면서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손꼽아 기다렸던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27일~9월4일)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1일 마라톤경보 기술위원회를 열고 지영준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남자 마라톤대표팀 최종 엔트리(5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신 정진혁 김 민(이상 건국대) 황준현(코오롱) 황준석(서울시청) 이명승(삼성전자)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 현역 선수 중 기록이 가장 좋은 지영준(2시간8분30초)의 탈락은 한국 마라톤의 단체전 메달 사냥에 큰 악재임에 틀림없다.
지영준은 출전을 고집했다고 한다. 아픈 데도 대표팀에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지영준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끈 정만화 대표팀 감독은 지영준의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정 감독은 "아쉽지만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이 안 된다면 내년 런던올림픽을 노려보자. 그때 보여주면 된다"며 지영준을 다독였다.
허벅지 근육통은 지난 4월부터 지영준을 계속 괴롭혔다. 최근 훈련지인 강원도 양구에서 40km를 뛰었는데 여전히 근육통이 왔다. 차일피일 미룰 수가 없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끝까지 기다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도 아픈데 경기 당일(9월4일) 아프지 말란 법이 없었다. 지영준이 포기하지 않으면 대표팀 후배들까지도 피해를 볼 수 있었다.
황영조 육상연맹 마라톤기술위원장은 "대회 전까지 부상에서 회복한다 하더라도 올시즌 풀코스를 완주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탈락시켰다. 열심히 훈련한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영준은 지난해 11월 광저우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올해 한 번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지 못했다. 6월에는 경찰의 마라톤 선수 금지약물 투여 수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 수사는 결국 무혐의로 종결됐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