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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 노병준, 골로 사랑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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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 노병준(32·포항),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2002년 전남에서 K-리그에 데뷔한 그는 2006년 유럽행을 선택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AK로 이적했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시련이었다. 이틀 만에 단장이 바뀌면서 꼬였다. 전남과의 이적료 문제가 불거졌다. 부상까지 찾아왔다. 6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은 것이 전부였다. 2007년 6월 국내 복귀를 결정했지만 설 곳은 없었다. 모교를 전전하며 훈련했다.

천신만고 끝에 2008년 포항에 둥지를 틀었다. 무려 14개월간 실전 경험이 없었다. 재기가 불투명했다. '특급 조커'로 부활했다. 후반 필요할 때 한 방을 터트리는 보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가족의 힘이었다. "힘들 때 나만 보고 있는 아이들과 아내를 보면서 무너지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다." 노병준은 2008년 12월 뒤늦게 웨딩마치를 울렸다. 이미 두 아들을 둔 상황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바람에 결혼식이 늦어졌다. 그래서 그의 가족사랑은 더 특별하다.

2009년 8월 26일 그도 울고, 아내도 울었다. 상대는 FC서울, 컵대회 4강전이었다. 프로 데뷔 8년 만에 첫 번째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팀의 5대2 역전승을 연출하며, 결승행을 이끌었다. 경기 후 아들을 안고 그라운드를 돈 그는 그동안의 설움을 떨쳐내며 감격에 젖었다. "세 번째 골이 들어간 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아내가 관중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팀도 승리하고, 개인적으로도 첫 번째 해트트릭이라서 그런지 눈물이 났다. 두 아들이 골 넣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는 모습이 큰 힘을 준다."

2011년, 2년 만에 꿈이 재현됐다. 그는 15일 딸을 얻었다. 화룡점정이라고나 할까. 그토록 바라던 딸이었다. 아빠는 마음이 급했다. 17일 K-리그 서울전(1대2 패), 23일 대구전(1대1 무)에서 딸을 위한 세리머리를 준비했다. 그러나 골과는 인연이 없었다.

27일 마침내 현실이 됐다. 공교롭게 상대는 또 다시 FC서울이었다. FA컵 8강, 단판승부였다. 1-1인 상황인 후반 10분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90분 종료 휘슬이 울렸다. 스코어는 2-2였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드디어 폭발했다. 연장 전반 9분과 후반 3분 결승골과 쐐기골을 작렬시켰다. 포항은 서울을 4대2로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그도 인간인지라 결승골을 터트린 후 깜빡했다. 쐐기골을 넣은 후에야 딸이 생각났다. 종합세트로 선물했다. 엄지를 입에 물고 '젖병 세리머니'를 펼친 뒤 동료들과 함께 '아기 얼르기' 뒷풀이를 했다.

"2경기 전부터 준비했었는데 골을 넣지 못해 오늘까지 미뤄졌다. 아빠의 심정으로 딸을 위해 꼭 하고 싶었다. 첫 골을 넣은 후에는 경황이 없었다. 두 번째 골을 넣은 후에 생각이 났다. 운동장에서 행복했다." 미소가 가득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였다.

노병준은 삼남매와 골로 사랑을 나눈다. 그의 '가족 사랑' 세리머니는 앞으로도 계속된다.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