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장대높이뛰기 세계 신기록 보유자(실외 5m06,실내 5m)인 '미녀새' 엘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 27일~9월 4일)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년간의 부진을 만회할 부활의 무대가 대구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신바예바는 지난 3월, 5년간 자신을 가르쳤던 비탈리 페트로프 코치와 결별을 선언했다. 전성기를 함께했던 예브게니 트로피모프 코치의 품에 다시 안겼다. 세계선수권대회를 몇개월 앞두고 코치를 바꾸는 것은 큰 모험이다. 훈련 방식과 프로그램을 모두 새로 짜야 한다. 하지만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페트로프가 '인간새' 세르게이 부브카(은퇴)를 키워낸 세계적인 지도자이지만 이신바예바는 페트로프의 지도 하에 최근 2년간 부진했다. 명예회복이 절실했다. 트로피모프는 3월 이신바예바의 코치직을 수락한 이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나를 배신했던 이신바예바가 내게 돌아오고 싶다고 전화를 해서 약간 놀랐다. 식당에서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고 이신바예바가 내게 용서를 구하면서 내 마음도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신바예바가 전 코치를 찾아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부탁을 했을 정도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트로피모프 코치와의 재결합은 이신바예바에겐 제2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 터닝포인트는 첫 만남의 순간 시작됐다. 5세부터 15세까지 체조를 했던 이신바예바는 15세에 신장이 1m74까지 훌쩍 자라자 체조선수의 꿈을 접었다. 이때 나타난 트로피모프 코치는 이신바예바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신바예바에게 장대를 잡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어린 시절 체조를 통해 기른 유연함은 이신바예바의 큰 무기였다. 둘의 호흡도 찰떡궁합이었다. 장대높이뛰기 입문 6개월만인 16세 때 이신바예바는 1998년 모스크바세계청소년대회에서 첫 우승(4m00)을 차지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문가들은 체조와 육상을 공중에서 결합시킨 완벽한 선수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그는 21세이던 2003년 영국 게이츠헤드육상대회에서 4m82로 세계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거침없는 기록 행진의 시작을 알렸다. 2005년 여자선수 최초로 마의 5m 벽을 넘었던 순간에도 이신바예바의 곁에는 트로피모프가 함께했으며 세계신기록 23개를 합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트로피모프는 아무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이신바예바에게 해고 당했다.
처음에 트로피모프의 공백은 없었다. 이신바예바는 2007년 일본 오사카세계선수권은 물론 2008년 베이징올림픽마저 제패했다. 하지만 거칠게 없었던 그에게도 슬럼프는 불현듯 찾아왔다. 2009년 베를린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출전한 영국 대회에서 '폴란드 복병' 아나 로고프스카에 패하더니 며칠 뒤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3번이나 바를 넘지 못하며 주저 앉았다. 2007년 세계선수권자는 이신바예바에게 좌절을 안긴 로고프스카가 됐다.
'베를린 참패' 이후 곧바로 출전한 대회에서 5m06을 넘으며 통산 27번째 세계최고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이후 끝 모를 부진의 늪에 빠졌다. 결국 그는 2010년 3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4위로 추락한 뒤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부상도 재기를 노리던 그의 발목을 잡았다. 올해 초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복귀를 미뤘다.
이신바예바는 2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열린 대회에서 4m85를 뛰어 넘으며 부활을 선언했다. 트로피모프를 만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 17일 벨기에 헤우스덴-졸더에서 열린 2011년 육상의 밤 경기에서 폭우에도 4m60을 넘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폭풍우가 내리던 악천후를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이신바예바가 대구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2년전 로고프스카에 당한 참패를 되갚고자 한다. 로고프스카는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실내선수권대회에서 4m85를 넘으며 1위를 차지했다. 올시즌 최고기록은 이신바예바와 똑같다. 진검 승부가 2년 만에 다시 벌어지게 됐다. 이신바예바의 컨디션으로 보아 세계기록 경신은 힘들어 보이지만 로고프스카와 경쟁을 하게 된다면 각본없는 드라마가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3년 모스크바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신바예바. 그에게 대구세계선수권대회는 남은 선수생활의 길을 제시해 줄 시험대이기도 하다. 이신바예바가 부활의 날개를 대구에서 펼수 있을지 세계 육상팬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