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세계선수권 남자자유형 400m 예선전 직후, "하체에 왜 힘이 없지?"라는 박태환의 말에 SK 박태환 전담팀은 바짝 긴장했다. 생애 최초의 1번 레인을 받고 몸도 마음도 위축됐다. 마이클 볼 코치가 해결사로 나섰다. 박태환 옆에 붙어앉아 "1레인에서 우승한 사람도 꽤 있다" "네 기록만 생각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말을 계속했다. 박태환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헌신적인 외국인 코치 마이클 볼에게 공을 돌렸다. "내 마음을 아셨는지 옆에서 계속 '할 수 있다'고 말해주셨다. 힘이 됐다"고 했다. 박태환의 광저우 부활에 이은 상하이의 기적 드라마 뒤엔 마이클 볼 코치의 빛나는 리더십이 있다.
▶'솔선수범 눈높이' 리더십
박태환의 아버지 박인호씨는 볼 코치에 대해 묻자 대뜸 "악수를 하는데 손에 굳은살이 잔뜩 박혀 있더라"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매일 아침, 선수들보다 일찍 나와 수영장 레인에 줄을 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선수들 위에 군림하기보다 선수들이 운동하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솔선수범' 리더십이다. 수직적인 사제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파트너십이다. 박태환은 스스럼없이 장난치고 편하게 대해주는 볼 코치 밑에서 "수영하는 것이 재밌다"는 말로 행복지수를 드러냈다. 볼의 교수법은 '자유로운 신세대' 박태환과 코드가 맞는다. 볼 코치는 박태환을 '파키(Parky)'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베이징올림픽 3관왕' 스테파니 라이스와 더불어 가장 아끼는 애제자다. 눈을 맞추고 살뜰한 대화를 통해 애정을 표한다. 훈련 계획을 짠 후에는 반드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고된 훈련이 있는 날은 설명이 더 길어진다. 목표 기록을 주고 50m 레인을 8~12세트씩 쉴새없이 오가는 구간 훈련은 토할 만큼 힘들다. 7월 초 최종훈련에서 볼 코치는 박태환에게 하루에 16세트의 구간훈련을 주문했다. 한계치에서 정신이 혼미해오는 박태환을 향해 "쑨양과의 자유형 400m 마지막 구간은 이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통스러워도 해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고 이해시켰다.
▶'따뜻한 카리스마' 리더십
상하이에 취재차 온 기자들에게 "발마사지 받으러 안가냐? 키 커진다"고 반갑게 농담을 건넨다. 애제자 박태환을 통해 알게된 정다래 등 한국대표팀 선수들에게도 늘 먼저 다가선다. 박태환에게도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쑨양이나 다른 선수들을 신경쓰지 않고 내 레이스에만 집중하겠다"는 박태환의 생각은 볼 코치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따끔하게 야단칠 때면 서슬이 퍼렇다. 대선수들도 꼼짝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다. 중학교때부터 가르쳐온 애제자 스테파니가 올해 초 살이 찌자 8㎏ 감량을 지시했다. 말을 듣지 않는 스테파니에게 "이런 식이면 너와 같이 갈 수 없다"고 통보했다. 스테파니는 이틀 동안 엉엉 울었다. 박태환에게도 마찬가지다. 훈련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면 볼 코치는 당장 '파키'를 풀 밖으로 불러낸다. "오늘은 방에 가서 쉬라"는 극약처방에 박태환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시 풀로 뛰어든다. 훨씬 나아진 폼으로 헤엄치기 시작한다.
▶'스포츠과학+ 펀(Fun)' 리더십
마이클 볼 코치는 베이징올림픽 3관왕 스테파니 라이스를 길러낸 호주대표팀의 코치다. 호주수영연맹에서 '올해의 지도자상'도 받은 국가적인 자산이다. 볼 코치는 대단히 꼼꼼하다. 훈련 프로그램을 일주일 단위로 빼곡하게 짠다. 월요일은 유산소, 화요일은 파워, 수요일은 지구력, 목요일은 스피드 식으로 주제를 정해 매일매일 다른 프로그램을 짠다. 게임도 자주 한다. 지루한 레인을 똑딱똑딱 오가는 선수들이 가능한 재밌게 운동하되,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방법을 채택한다. 선수별로 모든 미션이 수치화돼 있다. 상하이 현지에선 라이언 나폴레옹, 박태환 등 선수들에게 '맞춤형 미션 쪽지'로 지령을 내렸다. 목표를 정확하게 숫자로 정해준다. 200m에선 돌핀킥 4번, 400m에선 돌핀킥 2번을 하라는 식이다.
24일 자유형 400m 결승에서 볼 코치가 박태환에게 주문한 100m 구간 기록은 53-55-55-54초였다. 볼 코치는 세계신기록을 염두에 뒀다. 박태환은 1번 레인에서 물러서지 않고 공격적으로 정면승부했다. 볼 코치가 지정한 구간별 기록을 모두 더하면 3분37초가 나온다. 오차 범위를 감안하더라도 40초 벽을 깰 비장한 각오로 레이스에 임했다는 뜻이다.세계신기록에 준하는 목표치를 부여했고 박태환은 스승이자 파트너인 볼 코치를 믿었다. 그리고 결과는 '미션 클리어(Misson clear)'다. 상하이(중국)=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