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을 모른다고요? 천만에요."
장근석은 6살에 아동복 모델로 데뷔했다. 드라마 데뷔작은 10살 때인 1997년 케이블채널 HBS 가족 시트콤 '행복을 팝니다'다. 연기면 연기, 예능이면 예능, 거기에 MC까지 섭렵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최근에는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가수로서도 성공했다. 다재다능한 장근석을 시기하는 시선도 있었다. 인터넷에는 '허세 근석'이란 말로 장근석을 비아냥거리던 안티 팬도 많았다. 장근석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지나간 일이고, 그때는 어른 울타리에서 막 넘어온 꼬마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게 곱지 않게 보였던 듯 하다"며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옷 가방 짊어지고, 지하철 타고 다니던 꼬마 장근석"
"고생이라곤 모르는 것 아니냐는 시선은 오해예요." 사실 장근석은 귀공자같은 외모와 달리,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찍 철이 들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역 배우를 하면서 부유하게 살았을 것같다는 오해가 많았다. 그러나 정반대였다"고 털어놨다. "아역 배우 시절 엄마랑 함께 다니는 애들이 부러웠어요. 나는 혼자서 옷 가방을 짊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일을 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곤 "학교에서는 꼬마 학생일 뿐이지만 사회에서는 생업 전선에 뛰어든 배우였다"며 "여유가 없었다. 외동아들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겪기 버거웠던 과거지만, 그 덕분에 어디서든 혼자서도 훌훌 털고 일어나는 맷집이 생겼다고.
▶"유학 시절? 전기세 아끼려 장작 팼다"
장근석은 중 3 때 1년 정도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더욱 더 '고생을 모르는 아이'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장근석의 유학은 집안이 넉넉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장근석은 집안 사정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여유가 있어서 유학간 것이 아니라는 점은 강조했다. "남들은 여유가 있어서 유학을 갔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가난한 유학생으로 전기세와 난방비를 아끼려고 촛불을 켜고 공부했어요. 직접 장작을 패기도 했고요. 상상도 안 될 일이죠." 장근석은 "삐그덕거리는 50년 된 집에서 초라하기 그지 없었지만, 가족들과 즐겁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또 지금은 한류 스타로 칭송받지만, 언제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예은 기자 yeeuney@, 김겨울 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