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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박영창씨-학생운동가에서 무협지 번역가로


5공 초기이던 81년 가을, 연세대 신학과에 재학중이던 박영창씨(38)는 아르바이트 삼아 `무림파천황'이라는 무협지를 썼다.

운동권이었던 그는 책에 "무림세계처럼 현실세계에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있으며, 인류역사는 투쟁과 갈등을 통해 발전한다"는 요지의 원고를 몇장 끼워넣었다. 그는 얼마뒤 이 건과 시위주도 등 무려 27가지 `죄목'으로 2년간의 교도소생활을 해야 했다.

"감방에서 중국어를 독학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밑천삼아 `무협지 번역작가'라는 타이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요."

부지런히 번역했다. 약 15년간 번역한 무협지가 `포청천' `녹정기' 등 무려 100질, 500여권.

그 와중에 93년에는 `무림파천황'을 재출간, 10만부나 팔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도 4권짜리 판타스틱 무협소설 `원월만도(圓月彎刀)'를 번역했다.

김용과 더불어 중국 무협소설계를 30년 넘게 주도했던 대만의 무협작가 고룡(1936∼1985)의 작품으로 `보름달이 뜨면 여우가 미녀로 둔갑하여 나타난다'는 동서양 공통의 전설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현대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등장인물간의 두뇌게임, 심리묘사, 세련된 문체 등 고룡 특유의 장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작품.

`원월만도'는 시공사를 통해 나왔다. 번역중인 와룡생의 `의협지'도 이 출판사에서 출간할 예정.

무협지 독자가 나날이 늘면서 무협작가나 무협지전문번역작가를 꿈꾸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무협지를 많이 읽은 사람이 유리합니다. 특히 `태산압정'같은 초식(招式·무술의 동작) 등 수백개의 무협용어를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번역의 경우, 쉬운 예를 들자면 `장풍(掌風)'을 `장풍'으로 옮기지 않고 `손바람'으로 옮기면 웃음거리가 되죠."

학생운동가에서 무협지번역가로 변신한 그는 이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무협세계에도 정파와 사파가 있습니다. 양자는 싸우고 갈등하다 결국 정파가 이기지요. 그런 아름다운 역전의 드라마가 있어 여전히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