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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여제' 김연경(29)이 6년간 정든 터키 페네르바체를 떠난다. 새 둥지는 중국의 상하이 여자배구단(Shanghai Women's Volleyball Club)이다.
사실 러브콜은 4개월 전부터 밀려들었다. 일본, 터키, 중국 구단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에 남고 싶은 마음이 컸다. 2011년 페네르바체 유니폼을 입은 이후 페네르바체는 줄곧 세계 최고의 대우로 '배구 여제'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1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여자 선수는 전세계에서 김연경이 유일하다. 세계 여자배구 연봉 2위에 올라있는 '중국 배구 여신' 주팅(24·바크프방크)도 110만유로(약 13억7000만원)에 불과하다.
또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에서 이룬 것이 많다. 터키 진출 첫 시즌이었던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최우수선수(MVP)에도 등극했다. 더불어 터키 리그에서 두 차례(2014~2015, 2016~2017시즌), 터키컵도 두 차례(2014~2015, 2016~2017시즌) 정상에 올랐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몰려있는 유럽에서 뛰면서 기량과 명성을 함께 쌓았다.
협상은 다소 지지부진해졌다. 김연경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김연경은 한국-태국 여자배구 슈퍼매치를 위해 태국 방콕으로 떠나기 직전인 30일을 협상 데드라인으로 잡았다.
운명의 날, 김연경은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페네르바체와 결별을 선언했다.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연경은 '임금체불'에 시달려왔다. 터키리그 중 은행이나 증권사가 보유한 팀을 제외하고는 스폰서를 구하지 못할 경우 임금이 늦을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 석유 재벌들이 구단주인 러시아 리그에선 구단주의 기분에 따라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도 있다. 유럽에선 흔한 일이다. 그래서 안정장치가 존재한다.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에 따라 3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
임금을 떼일 우려는 없지만 김연경은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배구에만 전념하고 싶어 한다. 더 이상 잦은 임금체불이라는 외부요인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중국 상하이가 제시한 연봉과 옵션에 준한 카드를 내민 페네르바체의 잔류를 거절하고 새 도전에 나선 이유다.
특히 상하이 측의 적극적인 영입 의사도 김연경의 마음을 움직였다. 상하이 측은 김연경이 페네르바체에서 받았던 연봉의 비슷한 수준을 제시했다. 역대 중국 여자배구리그 최고 대우였다. 계약기간은 2017~2018시즌이다.
무엇보다 김연경은 중국으로 이적할 경우 휴식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중국은 유럽 리그에 비해 리그 기간(10월말~3월 중순)이 비교적 짧다. 좋은 컨디션으로 비시즌 국가대표로 활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고려했다.
김연경은 오랜 타지 생활로 지칠 대로 지쳤다. 때문에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에서 가족들과 자주 왕래하기 편해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중국리그 이적에 호감을 보였다.
김연경이 뛰게 될 중국 리그는 아직 프로화가 되지 않았다. 현재 12개 팀이 리그에 속해 있지만 6개 팀씩 두 그룹으로 나뉘어 10경기 밖에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배구 리그는 개혁의 소용돌이 앞에 서 있다. 중국은 2018~2019시즌부터 배구 프로화를 진행 중이다. 특히 남자배구보다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정부는 지원폭을 늘려 4개의 팀을 더 만들고 구단 자생능력 향상과 팬층을 확대해 나갈 청사진을 마련해 놓았다.
특히 중국은 김연경을 필두로 소위 여자배구 빅리그로 꼽히는 이탈리아, 터키, 아제르바이잔 리그에서 뛰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들을 대거 영입, 세계 넘버원 여자배구 리그로 도약하겠다는 원대한 꿈도 꾸고 있다. 출중한 기량과 스타성, 인지도까지 두루 갖춘 '팔방미인' 김연경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 그야말로 적절한 시점에 딱 맞아 떨어진 김연경의 중국 행이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