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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육상 큰 별+야구 경력' 서말구 30일 별세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5-11-30 20:22


한국 육상의 별이 떨어졌다. 한국 육상 남자 100m 기록을 31년간 보유했던 서말구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심장마비로 30일 별세했다. 향년 61세.

서 교수는 울산고 1학년 때인 1972년 본격적으로 육상에 입문했다. 교내 체력장 100m 달리기에서 12초1를 달렸다. 체육 교사가 육상을 권했다. 입문 3년만인 1974년 청주에서 열린 전국대회 남자 100m에서 11초1로 우승했다. 동아대에 진학한 그는 1975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히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전성기는 1979년이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최종 선발전에서 10초30을 뛰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동 계시였기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해 멕시코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 준결선에서 10초34를 기록했다. 한국신기록이었다. 2010년 김국영(광주광역시청)이 전국 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10초23을 기록할 때까지 서 교수는 무려 31년간 한국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00m에서도 탁월했다.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200m에서도 20초91을 기록하며 한국 기록을 새로 썼다. 이 기록은 1985년 장재근 화성시청 감독이 20초 41을 기록하며 깨졌다.

국내에서는 1인자였다. 하지만 메이저 국제대회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100m 동메달이 유일하다. 한국 기록을 세웠던 멕시코 유니버시아드에서도 100m 12위, 200m 9위에 올랐다. 세계 수준과의 차이가 컸다.

올림픽 출전 불발이 아쉬웠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출전 자격을 갖췄다. 육상 전종목을 통틀어 아시아에서는 단 3명뿐이었다. 하지만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은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했다. 한국도 보이콧에 참여했다. 서말구의 올림픽 출전 기회도 날아가버렸다.

이후 서 교수는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이색 경력을 추가했다. 바로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입단이다. 대외적으로는 대주자였다. 하지만 실상은 체력담당 트레이닝코치였다. 단 한번도 경기에 나서지는 않았다. 빠르기는 했지만 스타트 타이밍을 전혀 잡지 못했다. 3년간 트레이닝코치를 하면서 1984년 우승에 힘을 보탰다. 1987년 야구를 그만두면서 해군사관학교로 옮겼다. 체육 교수로 부임해 생도들의 체력을 담당해왔다. 2009년 육상대표팀 총감독을 역임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 12월 뇌출혈로 쓰러지기도 했다. 최근 병마를 털고 복귀했지만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서 교수의 빈소는 경기도 분당 차병원에 마련됐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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