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LG가 지난 90년에 이어 10년만에 프로축구 정규리그 최정상에 다시 올랐다. 안양에 기술축구를 이식해 최고의 팀으로 변모시킨 승부사 조광래 감독(46)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엮는다. 2000프로축구 삼성디지털 K리그 챔피언의 향방을 결정짓는 15일 안양공설운동장. 안양-부천간의 승부차기가 진행되는 동안 안양 조광래 감독의 입술은 바짝 말라있었다. 이제는 승부의 향방에 감독의 몫은 없었다. 오직 기다리는 일 뿐. 볼을 놓고 잠시 숨을 돌린 안양의 마지막 키커 히카르도는 3-2로 앞선 상황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승부차기를 하기 위해 볼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슈팅. 골네트가 출렁였다. 우승이었다. 지난 91년 부산 대우 코치시절 우승을 한 적은 있었으나 감독으로서는 처음 맛보는 감격. 그 순간 조감독의 머리속으로 그 동안의 굴곡 심했던 시절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프로축구가 태동한 83년부터 94년까지 선수-트레이너-코치-감독을 거친 친정팀 부산 대우를 성적부진으로 떠나야 했던 일， 절치부심하며 신생팀 수원 삼성의 코치직을 맡았으나 코칭스태프 내부의 불화로 팀을 떠나야 했던 일， 그리고 안양 LG의 사령탑을 맡으며 1년동안 하위권을 맴돌면서도 기술축구 완성을 위해 선수들과 땀을 흘렸던 일 등. 특히 역대 최연소 감독(39)으로 지휘봉을 잡았던 친정팀 부산 대우를 떠나야 했던 일은 무엇보다 가슴 아픈 기억이었다. "3년만 기다려 달라.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 놓겠다"고 약속하며 맡았던 첫 팀이었고， 기다릴 줄 모르는 한국 축구판의 문화 속에서 1년 4개월만에 엄청난 상처만 안고 떠나야 했던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부산 대우에서의 실패의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 절치부심끝에 다시 복귀한 신생팀 수원 삼성에서의 실패도 뼈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조감독은 결국 3번째로 둥지를 튼 안양에서 우승을 일궜다. '재주는 충분하나 덕이 부족하다'는 악평속에서도 브라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축구 선진국을 돌며 절감한 기술축구를 만년 하위팀 안양에 씨를 뿌려 우승의 수확을 거둔 것. 조감독의 눈시울은 그래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더욱 붉어졌던 것이다. 〈계속〉 〈추연구 기자 pot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