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잠실구장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3차전 승리 직후.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와 인터뷰 공세로 아수라장이던 현대 덕아웃에서 김재박 감독은 인파를 헤치고 투수 정민태를 찾았다. 나중 일을 몰랐으니 그때는 정민태의 국내 고별 등판인 줄 알았던 경기다. 김감독은 정민태의 손을 잡고 "더 잘 던질 수 있지 않았느냐"고 했다. "여기선 배터리가 다됐나 봅니다"하며 웃어보이는 선수에게 "수고했다"고 짤막하게 한마디를 했다. 그 눈매가 촉촉하게 젖었던 까닭은 섭섭함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한국시리즈 3연승의 감격이었을까. 다음날 감독에게 에이스를 떠나보내는 소감을 물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고맙다"고 했다. "현대 맡고 5년 동안 민태가 많은 걸 해줬습니다. 한해도 쉬지않고 꾸준히 뛰었습니다. 이만한 성적을 올릴때까지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셈입니다." 그런 말을 선수에게 직접 하는 법은 없다. 남들이 물어볼때 김감독은 선수 칭찬에 충분히 후한 편이다. 그러나 선수와 얼굴을 맞대고선 영 '뚱한' 감독이다. 한입 건너 감독의 칭찬을 전해들으면 현대 선수들은 늘 한소리다. "그런 말씀은 직접 좀 해주시지…." 잔정이 없는 편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감정적이지 않다. 감독과 선수사이 역시 하나의 인간관계다. 흔히 틀어지기도 한다. 팀마다 속절없이 감독의 미움을 받는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김감독 지휘하의 현대 5년에서 그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선수들의 인간적인 개성을 두루 파악하면서도 꼬치꼬치 참견하진 않는다. 철저한 '실력 지상주의'가 김감독의 용병술이다. 풀어놓고 지켜보다가 야구를 잘 하는 순서대로 쓴다. 경기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 벤치'지만， 선수단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방목형'이다. 감독으로부터 정다운 말 한마디는 흔히 듣지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현대 선수들은 마음 편하게 운동하는 편이다. 〈이승민 기자 cjminn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