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의 여우 김재박 <1>
기사입력 2000-11-07 23:00
모두가 그를 좋아하진 않는다.
사랑만큼 시샘을 많이 받는 스타감독이다. 그러나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한마디. '김재박은 야구를 잘한다.'
96년 현대 창단과 함께 사령탑에 발탁됐을때 적어도 야구인들은 깜짝 놀랐다.
현대의 계산은 또렷또렷했다. 새얼굴이 필요했다. 스타출신이 좋았다. 창단팀의 새로운 이미지를 원했고， 단박에 팬들의 눈을 끌어당길 카드를 찾았다. 크게 원만하다고 소문나지도 못했고 누구 한사람 화끈하게 편들어주는 야구인도 없었지만， 현대는 김재박을 발탁했다.
비야구인에 의한 선택. 그러나 결과는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96년 사령탑 첫해에 김재박 감독은 현대를 한국시리즈에 올려놓는다. 열세로 예상됐던 쌍방울과의 플레이오프서 2패후 3연승이라는 당시로선 역대 플레이오프 최초의 벼랑끝 뒤집기 드라마를 펼치며. 한국시리즈서 해태에 2승4패했지만， 4차전까지 승패를 나눠가질 만큼 선전했다. 막판으로 갈수록 인상적이었다. '단기전의 작은 승부사'였다. 벤치 첫해는 그렇게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한명의 진짜 사령탑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길이 그렇게 순탄할 리 없다. 97년 김재박 감독은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치른다. 이제껏 기록된 현대 최악의 해다. 잘되는 일이 한가지도 없었다. 간판 박재홍은 부상에 시달리며 시즌의 3분의2 밖에 뛰지 못했고， 에이스 정민태는 반타작(13승13패) 승률에 그쳤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겨낼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지나고 나면 경험으로 기억된다. 97년의 시련은 98년의 영광을 낳았다. 감독 3년차， 그 시작의 한마디부터 그 해는 비범했다.
"정상에서 한시즌， 바닥에서 한시즌을 겪었습니다. 이제 감독이라는 자리를 조금 알만합니다." 〈이승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