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무너지지않던 철벽의 마운드. 현대 홀드왕 조웅천은 이 가을의 '대마신'으로 불렸지만， 결국 그도 사람이었다. 팽팽한 긴장감과 태산만한 부담감을 끝까지 견뎌내진 못했다. 5-3이던 7회말 두산 심정수와 홍성흔에게 연속안타를 맞고 흔들리기 시작. 7번 왼손타자 강 혁에게 사구를 내주고 무사 만루에 몰렸다. 다음타자는 전날의 히어로 8번 홍원기. 사이드암스로에 강한 왼손 대타를 내기 위해 송재박 타격코치가 나섰지만， 타자는 굳게 도리질이다. "칠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고， 두산 벤치는 결국 홍원기의 물오른 타격감을 믿었다. 때론 데이터보다 감을 믿는 게 적중한다. 연속 커브에 2스트라이크를 먹고도 홍원기는 3구째 살짝 바깥쪽으로 쏠린 시속 118㎞짜리 커브를 제대로 걷어냈다. 1타점 중전안타. 이때부터는 두산 타선이 심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잡았다. 거푸 만루찬스에 몰리면 한국시리즈 MVP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투수 조웅천의 가슴이 오그라들수 밖에 없다. 한숨 참고 나온 9번 왼손 대타 최훈재를 내야땅볼， 다음타자 김민호를 삼진으로 잡아내 2아웃을 채운 것은 벼랑끝 조웅천의 저항. 그러나 2번 왼손 정수근과 맞서 기가 달렸다. 4구를 주지않기 위해 줄기차게 직구를 뿌렸으나， 꾀많은 정수근은 쉽게 속지않았고 풀카운트까지 끌고 갔다. 결국 6구째 몸쪽 직구가 가운데로 쏠렸다. 시속 128㎞에 적당히 높았으니 타자가 힘차게 받아친 타구는 전진수비중이던 현대 외야진을 넘어 우중간을 완전히 뚫는 싹쓸이 역전포가 되고 말았다. 〈잠실＝이승민 기자 cjminn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