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12월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퍼시픽리그의 다이에 호크스가 홈경기에서 상대팀 사인을 훔친 의혹이 뒤늦게 제기돼 큰 파문이 일어났었다. 이 '몰래카메라 사건'은 서일본신문이 '다이에의 일부 주전 선수들이 97년 5월부터 98년 6월까지 홈구장인 후쿠오카돔에서 배터리 사인을 훔쳤다'는 혐의를 폭로하면서 일본프로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다이에는 돔구장 외야에 설치된 백스크린용 카메라와 TV모니터를 이용해 상대 배터리의 사인을 보고 구질을 파악한뒤 이를 외야석에 미리 배치한 아르바이트생에게 휴대용무선기로 전달하고， 이 아르바이트생은 가지고 있던 메가폰의 위치를 통해 구질을 타자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메가폰을 똑바로 세우면 직구，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커브나 슬라이더， 왼쪽으로 기울이면 체인지업 등의 방식이다. 다이에의 '스파이행위'가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그동안 심증이 있었을뿐 물증은 없었으나 무라카미 구단사장이 이 사실을 시인했기 때문이었다. 이 추문으로 무라카미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사태는 가까스로 수습됐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이같은 사인 훔치기가 공공연히 성행했고， 그 방법도 다양했다. 66년에는 난수표가 등장해 사전에 투수와 포수가 약속된 난수표를 갖고 암호해독하듯 사인을 교환하는 등 사인 지키기와 훔치기로 그라운드가 뜨거웠다. 더구나 상대투수의 투구내용을 분석하기 위한 각종 전자병기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프로야구에서도 사인전쟁은 예외가 아니다. 97년 7월 미국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단 정보전쟁의 천태만상을 흥미있게 소개한 적이 있다. 소형 비밀카메라， 위장사인 등 미국CIA나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도구와 아이디어 등으로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는 첩보전을 방불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이에 사건이 터진후 지난 84년 6월에 이같은 행위를 금지한 퍼시픽리그 이사회의 결의를 재확인하고， '스파이행위의 금지'를 명문화했다. 미국프로야구에서도 최근들어 이같은 시비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프리에이전트제의 도입 등으로 선수이동이 빈번한데다 오랜 역사에서 정정당당한 승부가 몸에 배인 때문이다. 2000한국시리즈에서 현대와 두산이 '사인 훔쳐보기' 시비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수원 2차전이 끝난후 기자회견에서 두산 김인식 감독이 "현대주자들이 두산의 포수사인을 훔쳐보고 타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하면서 어불성설이라는 현대와 감정싸움을 벌인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승부로 관중을 매료시켜야할 최고의 빅게임에서 이같은 신경전이 텅빈 야구장을 더욱 썰렁하게 했고， 두팀간에 쌓인 감정의 앙금은 한국시리즈가 끝난후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누구를 위해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며， 진정한 프로가 무엇인가를 되묻고 싶다. 〈부국장 joygu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