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승리보다 값진 두산팬 응원
기사입력 2000-11-03 12:00
선수도 팬들만큼만 했더라면 얘기는 달라졌을 법하다.
2일 한국시리즈 3차전서도 1대3으로 무기력하게 져 현대에 3연패로 몰린 두산. 그래도 이날 한가지만은 확실히 이겼다.
어쩌면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승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 성숙한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다. 승자는 못 가진 것을 패자가 마음껏 누렸다.
우선 양팀 팬은 숫자부터 비교가 안됐다. 두산팬들은 내야는 물론 외야까지 송곳 꽂을 틈도 없이 전좌석을 메웠다. 숨막히던 LG와의 플레이오프때도 만원을 못 이룬 내외야가 수원에서 2연패를 당하고 온 뒤 오히려 싹 채워졌다. 반면 3루쪽 현대 관중석은 내야에도 빈 자리가 많았고 외야는 아예 '들판'이었다.
'양'보다 앞선 것은 '질'. 이날 두산이 얼마나 '속 터지는' 플레이를 많이 했던가. 1회 우즈의 실책성 더블플레이 실패로 2점， 5회 또 다시 우즈의 실책으로 1점 등 현대가 낸 3점을 모두 실책성 플레이로 갖다바쳤다. 또 8회에는 유일한 반전 찬스를 주루 실패로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다른 구장이었다면 물병 한두개쯤 날아들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두산팬들은 한마디로 '신사 숙녀 여러분'이었다. 아랑곳 않고 모두 일어서서 선수들 이름만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결국 속시원한 장면 한번 못 보고 경기가 끝나자 이번엔 라커룸 앞 출구로 몰려가 선수 한명이 나올 때마다 막대풍선을 두들기며 '파이팅'을 외쳐댔다.
야구를 즐길줄 아는 골수팬이 많기로 유명한 두산. 선수는 졌어도 팬은 이겼다. 〈박진형 기자 ji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