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안정적인 은행 퇴사하고 역기 잡은 '꿈꾸는 역도 선수' 김규호…220kg와 패럴림픽 메달 향한 도전은 현재진행형

윤진만 기자

기사입력 2025-02-24 10:08


[인터뷰]안정적인 은행 퇴사하고 역기 잡은 '꿈꾸는 역도 선수' 김규호……
역도 김규호.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인터뷰]안정적인 은행 퇴사하고 역기 잡은 '꿈꾸는 역도 선수' 김규호……
연합뉴스

"퇴사하겠습니다." 2024년 파리패럴림픽 역도(파워리프팅) 80㎏ 4위를 차지한 장애인 역도 간판 김규호(44·평택시청)는 한때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는 은행원이었다. 2012년에 입사해 2021년 10월 퇴사할 때까지 9년간 우리은행을 다녔다. 수인업무센터 금융정보팀 등에서 일했다.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어느 날 김규호의 퇴사 결심을 전해들은 한 직장 선배는 '은행을 떠난 사람 중 90%가 후회를 했다. 나는 네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을 좇는 건 좋지만, 옳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불혹을 갓 넘긴 나이였다. 40세는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이른 나이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꿈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김규호는 "주변에선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했는데, 은행에 다니더라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 선택이 옳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규호의 꿈은 '패럴림픽'이었다. 만 4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김규호는 장애인 조정 선수로 활동하다 2013년 역도 선수로 전향했다. 그 이후 은행 업무와 역도 선수를 병행했다. 퇴근 후 역기를 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생갭다 쉽지 않았다.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자비를 털어야 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파리패럴림픽에서 메달에 도전하기 위해선 우선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했다. 퇴사 후 평택시청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운동에 전념한 김규호는 2023년 부단한 노력으로 목표로 삼은 200㎏을 돌파했다. 체중 100㎏ 이하 장애인 선수가 200㎏ 이상을 든 건 김규호 포함 4명뿐이다. 김규호는 "역도라는 종목은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운동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다. 200㎏도 꾸준한 노력으로 일군 결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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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에 도전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김규호는 "2024년에 사고가 잦았다. 운동 중 엄지발가락을 다쳤다. 두 번이나 블랙아웃이 왔고, (역기)120㎏에 깔리고, 70㎏을 배에 떨어뜨렸다. 회복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스트레스가 커졌고, 오버페이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지금까지 준비한 것만 보여주자'는 식으로 마음을 비웠다. 그랬더니 패럴림픽에서 3등과 격차가 얼마 벌어지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냈다"라고 말했다. 김규호는 1차 시기에서 202㎏을 가볍게 들었다. 2차 시기에서 207㎏을 드는 데 실패했고, 3차 시기에서 216㎏을 신청해 승부수를 띄웠지만, 팔꿈치를 모두 펴지 못해 실패 판정을 받았다. 라술 모흐신(이라크)이 215㎏을 들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김규호는 "세계 최정상과의 격차를 인정했지만, 나를 증명하고, (메달)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대회였다. 4년 더 도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360도로 구성된 경기장에서 한 한국인 관중이 '김규호!'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김규호는 2028년 LA패럴림픽이라는 명확한 목표점이 있기 때문에 파리 대회가 끝난 뒤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했다. 세계 최정상과의 격차를 좁히는 방법이 오직 땀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규호는 3월 일본 대회를 시작으로 6월 중국 대회, 10월 이집트 엘리트 월드챔피언십에 줄줄이 출전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2026년 아이치-나고야장애인아시안게임이 열린다. 김규호는 "제 체급 1~3위가 모두 아시아 선수다. 이란, 중국, 이라크, 요르단 등이 강세다. 아시안게임에서 220㎏을 들어 포디움에 오르면 다음 패럴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도 선배'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김규호의 롤모델이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집중해야 해'라는 장 차관의 말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김규호는 "최고의 선수가 돼 최고의 연봉을 받는 것이 목표다. 역도 종목에서 김연아, 손흥민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그래서 훗날 떳떳하게 후배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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