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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진 선수 아시죠?"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의 학교체육 정상화에 대한 2차 권고안 발표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19년 전 수영 국가대표 장희진 이야기부터 꺼냈다. 10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장희진, 국가대표 선수 선수 파동 19주년 기념 국회행사'(주최 국회교육희망포럼·스포츠개혁포럼, 주관 학교체육흥회)를 연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2000년 5월,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50m 자유형 한국신기록 보유자였던 중학생 국가대표 장희진이 기말고사를 위해 수업을 듣고자 태릉선수촌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국대 제명' 징계를 받았던 그때 그 사건을 언급했다. 2019년 혁신위 권고 시점에 맞춰 다시 '그날의 장희진'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안 위원장은 "장희진을 알면 한국 체육의 과거, 현재,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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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위원장에게 '장희진'은 특별한 이름이다. "내가 중앙대 교수가 된 지 두 달만의 일이다. 초임교수였던 나는 '장희진 구명운동'을 주도했고 사흘만에 무려 200여 명의 교수들이 서명했다"고 떠올렸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어린 선수에게 오히려 상을 줘야 한다''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사건은 2001년 체육시민연대 출범의 이유가 됐고,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은 안 위원장과 체육시민연대, 학교체육진흥회의 모토가 됐다.
19년 전 논란의 국가대표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두 번의 올림픽에도 나섰다. 하버드대 입학허가서를 받았지만 최고의 수영 환경을 갖춘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를 택했고, 2017년부터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소위 '장희진 파동' 19주년 행사에서 안 위원장은 모범적인 '공부하는 학생선수' 및 지도자 17명을 선정해 장학금을 전달하고 격려할 예정이다. 체육특기자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도 이어진다.
안 위원장은 이 행사의 두 가지 의미를 설명했다. "첫째, 19년 전 어린 장희진이 외쳤던 교훈을 모두가 망각하고 있었다. 장희진의 외침을 다시 꺼낼 때가 됐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체육 유신체제'를 극복하는 신호탄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혁신위 지원이었다. "혁신위는 문경란이라는 비체육인 덕분에 혁신이 가능하다. 체육인을 혁신위원장으로 모시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10년 전 여성선수 인권위원회 실태조사를 한 경험으로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바람 불 때 연 날린다고, 이번 아니면 절대로 못한다는 절박함으로 헌신하고 있다. 문체위원장으로서 이들의 헌신에 답하고 대통령과 국민의 명령인 혁신의 동력을 꺼지지 않도록 불을 지펴주는 역할을 고민하다 이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개혁포럼도 그래서 만들었다. 정부, 혁신위, 학교체육진흥회, 대학스포츠협의회가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소통하면서 협력하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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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위원장은 2019년의 한국 체육이 19년 전과 똑같이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개탄했다. "19년이 흘렀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합숙, 특기자, 소년체전, 연금, 병역특례 등 한국체육의 엘리트 육성 시스템은 유신체제의 유산이다. 이런 것들이 1972~1973년부터 생겼다. 유신 헌법 발효되고 북한과 냉전 구도속에 스포츠가 총성 없는 전쟁을 수행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모든 것이 민주화, 정상화됐지만 체육만 여전히 유신체제, 1973년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가 전문선수를 키우고 메달을 국가가 보상해주는 시스템은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던 것이다. 이것을 21세기에 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메달 땄다고 연금 주고 병역 혜택 주는 나라도 우리나라뿐이다. 다 유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2019년, 여성선수 심석희의 희생으로 스포츠 유신체제 극복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했다.
안 위원장은 "'심석희 미투 사건' 이후 대통령이 직접 '바꾸라'고 하셨다. 메달 중심에서 건강 중심의 체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어릴 때부터 운동하다 보면 우수한 선수가 나오고, 이 선수들을 국가가 챙겨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하는 '선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급격한 혁신이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공포 마케팅'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혁신은 내년 올림픽 성적과 상관이 없다. 어차피 메달은 양궁, 유도 등 비인기 종목에서 딴다. 비인기종목은 스포츠클럽과 상관 없다. 스포츠클럽은 축구, 야구 등 동호인이 많은 종목에서나 가능하다.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국 체육 다 망한다'식의 '공포 마케팅'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더 많은 메달을 따기 위해 저변을 확대하고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소년체전은 선수가 없다. 학생축전 형식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대회에 참여하는 형태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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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위원장은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에서 비체육인이자 인권전문가인 문경란 위원장의 타협 없는 혁신 드라이브를 '신의 한수'라고 평가했다. 안 위원장은 "50년 된 체육 유신체제를 바꾸는 데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바꾸면 다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도 있다. 공포심 없는 문 위원장이 나섰다. 문경란은 '신의 한수'다. 유신체제를 최고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문경란의 칼은 '위험하고, 현실을 모르고, 우리를 죽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유신체제 극복을 생각하는 이들은 문경란을 고맙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문경란 덕분에 한국 체육이 선진화됐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저항은 있겠지만 저항이 있어야 제대로 된 개혁이다"라며 현장 여론에 굴하지 않고 혁신을 밀어붙일 뜻을 분명히 했다. "'메달보다 국민건강'이라는 새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10년이 꼬박 걸리겠지만, 가야할 길이다. 이 10년을 두려워하면 다시 유신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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