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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체급 국가대표' 출신 홍기호의 조련 비법

최재성 기자

기사입력 2018-07-31 16:40

<조영섭의 복싱 히스토리> '3체급 국가대표' 출신 홍기호의 조련 비법

얼마 전 서울복싱연맹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필자는 박성춘 회장과 함께 충북 보은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년체전 선발전을 서울팀 응원 격려차 참관했다. 89년 만 26세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30년이 지나 경기장을 찾은 필자의 감회는 남달랐다. 체육관으로 입장하자마자 아주 반가운 복싱인을 만났다. 주인공은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홍기호였다. 홍기호는 개그맨 홍기훈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 홍기호가 특별히 반가운 이유는 2002년 해체됐다가 2014년 손석민 총장의 강력한 의지로 재창단된 서원대 복싱부에서 학생과장을 맡아 복싱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이기 때문이었다.


◇'복싱 명가' 서원대의 부활을 주도하고 있는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홍기호.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1981년 창단된 서원대는 홍기호를 비롯해 배석정, 곽호연, 최동식, 김창현, 강용수, 김태주, 김경수, 배진석, 이성태 등 좋은 선수들을 화수분처럼 쉼 없이 배출한 학교였다. 특히 2005년 세계선수권 플라이급 우승자 이옥성을 비롯해서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홍성식과 조석환, 그리고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인 황경섭 등 99년 모집을 중단할 때까지 17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한 복싱의 요람이었다. 서원대 복싱부가 부활의 서곡을 울리자 문득 과거에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학들이 하나둘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80년대 초반 이현주를 비롯해 문성길, 전칠성, 권현규, 장성호 등을 배출했던 목포대를 비롯해 김현치, 박찬희, 양석진, 이재권, 홍동식, 박인태, 김치복 등을 배출한 동아대, 황철순, 김정철, 정용범, 김광선, 이 훈, 변정일 등을 배출한 동국대, 조용래, 박시헌, 조범래, 박기봉 등을 배출한 경남대, 유종만, 이거성, 신준섭, 최우진, 강월성 등을 배출한 원광대, 송순천, 김기수, 김성은, 김유현, 백현만 등을 배출한 경희대, 채성배, 박준호, 고영삼, 진명돌 등을 배출한 호남대 등이 부활하여 복싱계의 르네상스를 열어주기를 기대하면서 현역 시절 라이트미들급, 미들급, 라이트헤비급 등 3체급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한 홍기호의 라이프 스토리를 펼쳐 본다.

62년 충북 괴산 출신인 홍기호는 전재완 씨가 운영하는 청주복싱체육관에서 복싱과 인연을 맺었다. 훤칠한 키에 잘 다듬어진 체격, 깨끗한 마스크에 차분한 성품의 홍기호는 청주 형석고 2학년 때 복싱에 입문한 이래 고교 졸업 때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선수였다. 서원대에 진학한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김유현(당시 경희대)에게 패했지만, 김유현이 부상으로 최종 선발전에 불참하자 홍기호는 무주공산에 무혈입성하며 태릉에 입촌한다. 소프트웨어는 부족했지만, 중량급답지 않게 체력이 엄청 뛰어났다. 태릉선수촌에서 실시하는 새벽 운동에서 '불암산 오토바이' 문성길이 유일하게 등을 바라보고 뛰었던 선수가 바로 홍기호였다. 천하의 황영조가 마라톤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이봉주의 등을 바라보고 뛰지 않았다고 회고했지만, 문성길에게 홍기호는 호적수였다. 물론 그 후엔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리면서 문성길의 독주가 진행됐지만. 문성길과 경쟁하면서 시너지효과가 발생해 체력이 더욱더 보강된 홍기호는 일취월장 실력이 급상승했다. 그해 홍기호는 제8회 킹스컵대회와 제10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주목을 받는다. 특히 남북 경기에서 박기철, 권현규, 김현호 등은 패했지만, 홍기호는 북한 이운용과의 준결승에서 1, 2라운드 열세를 딛고 3라운드에서 활화산처럼 터지는 연타를 쏟아부으며 역전에 성공, 우승컵을 들어 올린 쾌거였기에 기쁨은 배가되었다. 83년엔 라이트 미들급으로 출전한 로마월드컵 최종 선발전에서 숙적 이해정(한국체대)에게 3대2로 판정승하며 본선에 진출한다. 85년 호주컵 동메달에 이어 제12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홍기호는 이듬해 86년 서울아시안게임 최종 선발전에서 미들급으로 출전, 신준섭을 2차례 다운시키고도 고개를 숙인다. 숙적 신준섭에게 3연패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88년 서울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홍기호는 곽귀근(당시 상무)에게 패하자 운동을 중단한다. 하지만 이듬해 89년 오산 전국체전에서 몸만 풀고 경기에 출전했지만, 후배 복서들이 그의 강타에 펑펑 나가떨어지면서 우승을 차지하자 복귀를 결심한다. 그때 그의 나이 만 27세. 당시는 25세 전후가 되면 은퇴하는 게 관례였다. 김광선, 허영모, 문성길, 김동길, 신준섭, 이남의, 박기철, 정용범, 이해정 등 대부분의 선수가 예외 없이 그랬다. 하지만, 홍기호는 본인의 18번째 국제대회인 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도 박세종을 꺾고 본선에 출전, 동메달을 획득하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리고 바로 모교인 서원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 한마디로 홍기호라는 인물은 서원대 복싱 역사에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끝인 상징적인 존재였다.


◇동료이자 경쟁자로 80년대 아마복싱 무대를 함께 누볐던 곽귀근, 이현주, 홍기호(왼쪽부터)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그해부터 홍기호는 홍성식, 경정구, 고경수, 진정재 등을 조련하며 각종 대회에서 금메달 사냥에 성공한다. 특히 경정구는 경찰서 사환으로 근무하던 중 스승 홍기호를 만나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감격을 누린다. 97년에도 그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이성태가 전국체전 밴텀급에서 금메달을 뽑아 올렸다. 98년 전국체전에서도 이성태와 김창현(라이트급)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99년 전국체전에선 서원대가 총 11개 체급 중 조석환(밴텀급), 배진석(라이트웰터급), 최동식(라이트미들급), 강용수(미들급) 등이 우승을 뿜어내며 4체급 석권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창출한다. 또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서원대 복싱부 8명 중 이성태, 배진석, 김경수, 최동식, 강용수, 조석환 등 무려 6명이 선발되어 입상하는 등 괄목할만한 금자탑을 쌓았다. 그 후에도 홍기호가 이끄는 서원대는 조석환, 이옥성, 김재기, 김경수 4인방이 2002년 해체될 때까지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지속적으로 쏟아냈다. 홍기호는 전형적인 덕장이었다. 그는 선수를 배려할 줄 알고, 역발상으로 단점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해 전력을 끌어올릴 줄 아는 전략가였다. 이를테면 강용수는 취권 비슷한 엉성한 폼을 지닌 선수였고, 최동식은 프로선수처럼 흐느적거리면서 변칙 복싱을 구사하는 복서였지만 홍기호는 뜯어고치지 않았다. 그 동작에 손을 대면 그 선수의 리듬이 끊어진다는 것을 그는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원대 복싱선수들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도자 스타일과 다르게 다양한 폼으로 링이라는 무대에서 그들만의 경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대부분 수도권 대학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이었지만, 서원대에 입학하면서 꽃을 피웠다. 특히 용산공고 시절 별다른 성적이 없던 최동식이란 평범한 들개(?)를 일약 진돗개로 승화시켜 태극마크를 달게 한 주역도 홍기호였다. 최동식은 대표급 선수인 송학성, 최익현, 구재강, 신학출 등을 꺾었고, 특히 용인대 주력 선수들인 황성범, 이창윤 등과 모두 12차례 싸워 전승에 9KO를 기록하며 '용인대 킬러'란 별명을 얻었다. 2000년엔 천하의 김정주(상지대)를 상대로 2차례 다운을 곁들이며 2회 RSC승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올림픽 2연속 메달 획득에 성공한 김정주는 '최동식에게 완패했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복싱계의 명조련사'로 이름난 홍기호(오른쪽))와 그의 지도에 힘입어 국가대표로 활약한 최동식.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이렇듯 무명들을 재활용(?)하여 환골탈태시킨 홍기호는 선수들에게 너그럽고 큰형님처럼 대해준 아테네식 지도자였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복싱계의 도덕군자였다. 2014년 재창단된 서원대는 역시 전국체전에서 꾸준히 금메달을 쏟아내고 있다. 작년에도 김두레, 박진훈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명불허전의 지도자임을 재증명했다. 홍기호는 훈련할 때 선수들에게 메달 획득에 대한 중압감을 주지 않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대표선발전 등 비중 있는 경기에서도 새벽 운동 때 수시로 축구경기로 선수들을 기분전환시키는 등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다. 그에게 우승을 쏟아내는 비결을 묻자 "비결이 없는 것이 비결"이라고 우문현답한다. 반 고흐는 '영혼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최종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지 마라.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갈 뿐이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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