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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구기종목에선 운동 소질을 찾기 힘들었다. 축구공을 차면 소위 '개발'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예외인 종목이 있었다. '스케이트'였다. 곧잘 얼음을 지쳤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곽윤기(29·고양시청)는 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중학생이 돼서야 제 기량을 뽐내기 시작했다. 한 단계를 올라서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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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2010년 4월 불거진 '대표선발전 짬짜미 의혹'에 연루됐다. 쇼트트랙 대표팀 일부 코치와 선수가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있도록 대회에서 협조했다는 의혹이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대한체육회 등으로 구성된 공동조사위원회는 2009년 대표선발전 1000m 준결선에서 곽윤기와 이정수가 서로 도왔다고 판단, 최소 1년 이상의 자격정지를 권고했다. 곽윤기와 이정수 측은 바로 이의신청을 제출, 2010년 7월 대한체육회로부터 6개월의 완화 조치를 받았다. 대표선발전은 물거품이 됐고 세상은 그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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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기는 막내일 때 톡톡 튀던 매력을 잠시 감췄다. 대신 진지함으로 '중무장'했다. 어린 동생들을 이끌고 소치올림픽 때 노메달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맏형' 리더십은 강력했다. 항상 밝은 미소와 희생으로 후배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조력했다. 말 한 마디에도 동생들의 기를 살려주려고 노력했다. "우리 남자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팀이라 느끼고 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22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벌어진 대회 5000m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은 날아갔다. 그러나 환하게 웃었다. 과정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선수이고 싶다"는 곽윤기, 그의 '맏형' 리더십은 한국 남자 쇼트트랙 부활의 키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