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평창 단일팀]첫발 뗀 단일팀, 대패가 아쉽기만한 '하나'가 됐던 길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2-10 23:22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 예선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가 열렸다. 세라 머리 총감독과 박철호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올림픽 사상 첫 남북단일팀의 첫 성적표는 대패였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10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랭킹 6위 스위스와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0대8로 완패했다. 실력차를 인정할수밖에 없는 패배였다. 하지만 단일팀은 역사적 첫 발을 떼며 큰 의미를 남겼다.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새해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가 확정됐다.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 공동입장 등이 결정된 가운데, 단일팀에 관한 발표는 없었다. 하지만 1월12일 충북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18년 국가대표 훈련개시식에 참석한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지난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등을 북한에 제안을 해놓은 상태"라고 밝히며 단일팀 결성 추진이 세상에 밝혀졌다.

정부의 결정에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북한 선수들이 합류할 경우, 그간 올림픽만 바라보고 땀흘려 준비한 우리 선수들이 피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러 머리 감독 역시 "올림픽 임박한 시점에서 단일팀 논의가 나온다는 점은 충격적"이라며 반대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단일팀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신년 기자단 오찬에서 "여자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들었다"는 말로 역풍을 맞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여자 아이스하키 션수들을 만나는 등 단일팀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세라 머리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총 감독과 박철호 북한 감독이 25일 충북 진천군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 앞에서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북한 선수단은 선수 12명과 지원 2명, 감독1명으로 구성됐다. 남북 단일팀은 합동훈련을 통해 조직력을 다진 뒤 2월 4일 스웨덴과의 평가전을 통해 첫 실전 경기를 치른다. 평창올림픽 첫 경기는 2월 10일 열리는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다.진천=사진공동취재단/2018.1.25/
결국 1월20일 최종 결정이 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남북 올림픽 참가 회의'를 통해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 남북 단일팀을 승인했다. 남북이 한팀을 이뤄 출전하는 것은 1991년 탁구세계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이후 27년만이다. 올림픽 등 종합대회에서 단일팀이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 선수 12명이 합류하며 단일팀의 엔트리는 35명으로 결정됐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북한 선수는 최소 3명으로 제한했다. 올림픽까지 20여일을 앞두고, 언제 합류할지도, 누가 합류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그야말로 시계제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머리 감독이 나섰다. SNS 프로필 사진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자,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예상치 못한 북한 선수들의 합류로 새롭게 라인을 짜야 하는 머리 감독은 "감독으로서 최고의 선수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도 그럴 생각 없다. 전략은 감독이 할 수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감정싸움 할 때가 아니다"고 앞만 보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사진제공=문화체육관광부
마침내 25일 북한 선수들이 합류했다. 서먹서먹했던 남과 북의 선수들은 28일 합동훈련과 함께 금세 친해졌다. 머리 감독은 남-남-북-남-남-북 순서로 라커를 배정했다. 식사도 함께할 것을 주문했다. 공교롭게도 북한 선수들의 생일이 이어졌다. 남, 북 선수들은 이틀 연속으로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훈련에서 남, 북은 없었다. 박철호 북한 코치는 머리 감독의 지시에 순순이 따랐다. 북한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할때는 한국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도왔다. 언어의 장벽은 통역, 그것도 안되면 손짓, 발짓으로 넘었다.


생갭다 북한 선수들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전술 적응력도 높았다. 머리 감독은 당초 4라인에 북한 선수 3명을 배치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2~4라인에 북한 선수들을 고루 배치하는 결단을 내렸다. 힘과 공격력이 좋은 북한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살림과 동시에 팀의 응집력을 키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단일팀은 4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첫 선을 보였다. 훈련 시작 일주일만이었다. "팀코리아"를 함께 외치고 경기에 나선 단일팀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였다. 스웨덴에 1대3 석패했다. 우려했던 조직력 문제는 없었다. 북한 선수 기용 문제 해법도 찾았다.

경기를 마친 후 곧바로 결전지인 강릉으로 넘어온 단일팀은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머리 감독은 때로는 인터뷰 금지, 때로는 하루 세차례 훈련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필요하면 휴식도 줬다. 8일에는 다 함께 경포대로 나가 기분전환을 했다. 선수들은 팀 분위기에 만족감을 표시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9일 마지막 훈련을 마친 머리 감독은 "정치가 아닌 승리하기 위해 왔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단일팀은 이렇게 10일 스위스와의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렀다. 단일팀의 힘찬 발길은 이제 시작이다.


강릉=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