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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마침내 모습 드러낸 단일팀, 첫 경기 어땠나?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2-04 20:04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4일 오후 인천 선학링크에서 스웨덴과 친선 평가전을 벌였다. 단일팀 박종아(왼쪽)가 1-2로 따라붙는 골은 넣은 후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인천 | 사진공동취재단/2018.2.4/

4일 남북 단일팀과 스웨덴의 친선경기가 열린 인천선학국제빙상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단일팀이 첫 선을 보이는 경기였다.

경기장 밖은 어수선했다. 도로 하나를 두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보수와 한반도기를 든 진보 진영이 극렬히 대립했다. 경찰이 가운데 자리하며 불상사는 없었지만, 단일팀을 둔 남남 갈등을 명확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경기장 안도 복잡했다. "우리는 하나다", "통일 조국"을 외치는 3000여명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스포츠보다는 정치적인 목소리가 더 컸다. 분명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현장의 모습은 아니었다.

다행히 선수들은 냉정을 유지했다. 35명 중 선택된 22명의 선수들은 가슴에 '한반도'와 'KOREA'를 새긴 채 결연한 표정으로 빙판 위를 누볐다. 흔들리지 않고 '경기'를 했다. 일주일 간 짧은 시간을 함께 했을 뿐이지만, 제법 '팀' 같아졌다. 빙판에 나설때 함께 함성을 외쳤고, 골이 터지면 함께 기뻐했다. '세계랭킹 5위' 스웨덴에 1대3으로 무릎을 꿇었지만, 결과 보다는 얻은게 더 많았다.

이날 초미의 관심사는 라인 구성이었다. 지난 달 20일(한국시각)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남북 올림픽 참가회의'를 통해 남한 23명, 북한 12명으로 이루어진 올림픽 사상 첫 단일팀이 탄생했다. 22명의 경기 엔트리 중 3명은 반드시 북한 선수를 넣어야 했다. 이날은 올림픽 개막 전 마지막 평가전인만큼 북한 선수 활용법에 대한 새러 머리 단일팀 감독의 구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4일 오후 인천 선학링크에서 스웨덴과 친선 평가전을 벌였다. 단일팀 북한 정수현(왼쪽)과 려송희가 교대를 하고 있다.
인천 | 사진공동취재단/2018.2.4/
단일팀 결성 후 북한 선수 활용법을 두고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당초 가장 유력한 것은 북한 선수 3명을 4라인에 몰아넣는 것이었다. 머리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몇 년 동안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북한 선수들은 1~3라인보다 4라인에 배치시킬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한 바 있다. 하지만 합동 훈련이 시작된 28일부터 각 라인에 북한 선수 1~2명을 포함시켰다. 35명의 선수들을 고르게 섞어 다양한 조합을 실험했다.

머리 감독의 최종 선택은 '고르게'였다. 머리 감독은 1라인을 제외하고, 2~4라인에 골고루 북한 선수들을 기용했다. 1라인은 기존에 발을 맞춘 박종아 이진규 최유정 박채린 엄수연이 그대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 전지훈련부터 변함없이 함께한 멤버들이었다. 2라인부터는 변화가 생겼다. 2라인에 정수현, 3라인에 려송희, 4라인에는 김은향 황충금이 포함되며 새로운 라인이 꾸려졌다. 황충금을 제외하고는 모두 포워드였다. 최소 출전 인원인 3명을 넘어 4명의 북한 선수들이 나섰다. 단일팀 훈련 모습을 지켜본 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머리 감독이 이날 경기에 나선 북한 선수들의 개인 능력과 전술 이해도에 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고 귀뜸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4일 오후 인천 선학링크에서 스웨덴과 친선 평가전을 벌였다. 북한 정수현(26번)이 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천 | 사진공동취재단/2018.2.4/
단일팀의 조직력은 생각 보다 나쁘지 않았다. 일주일 밖에 훈련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력에서는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개인기량이 좋은 북한 선수들에게 공격적인 부분을 맡기는 등 역할 분담도 된 모습이었다. 가장 눈에 띈 북한 선수는 단연 정수현이었다. 정수현은 지난해 강릉세계선수권에서는 2골과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북한 선수 중 가장 좋은 기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머리 감독도 단일팀 결성에 앞서 "북한 선수 중 정수현 원철순 김농금 등이 눈에 띄었다"고 평한 바 있다. 정수현은 이날 저돌적인 스케이팅과 움직임으로 북한 선수들 중에는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받았다. 려송희 김은향 등이 뒤를 이었고, 수비수 황충금은 출전하지 못했다. 3피리어드 중반 부터는 북한 선수 두명이 링크를 누비는 장면도 나왔다.

경기는 완패였다. 스코어상으로는 그랬다. 1피리어드 16분16초 레베카 스텐버그, 17분50초 한나 올슨, 19분48초 에리카 그람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신소정 골리의 선방이 없었다면 더 많은 골을 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혼돈스러웠던 지난 몇주를 감안하면 긍정적인 장면도 많았다. 상대는 올림픽을 대비해 정예로 나선 세계 5위였다. 1피리어드 18분15초 박채린의 패스를 받아' 에이스' 박종아가 기록한 득점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고질병이었던 후반 실점을 줄였다는 점도 좋았다. 뒤로 갈수록 조직력도 나아지는 모습이었다. 단일팀은 경기 후 곧바로 결전지인 강릉으로 출발했다.


나쁘지 않았던 첫 걸음, 단일팀의 첫 경기 풍경이었다.


인천=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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