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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선수]'86체조요정'김소영 센터장의 나눔공부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5-12-23 18:41


23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 올림피아홀에서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포럼이 열렸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번 포럼은 '대한민국 체육유공자 1호' 김소영 척수장애인협회 재활지원센터장과 이상하 체육인재육성재단 주무, 여자축구 국가대표 전가을이 패널로 참석해 본인들의 소중한 경험담을 소개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체조 국가대표로 활약한 '대한민국 체육유공자 1호' 김소영 척수장애인협회 재활지원센터장이 장애를 이긴 공부를 주제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12.23

생각지도 못한 불행은 갑자기 찾아왔다. 촉망받는 체조 유망주에서 척수 장애 1급이 됐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다. 절망의 늪이 찾아왔다. 그래도 좌절할 수 없었다. 마음 속에 '고래 한 마리'를 키웠다.

그러기를 30년. 보통 사람들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고래를 크게 키웠다. 일반인도 힘들어하는 유학을 다녀왔다. 상담 전문가가 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척수장애인들을 위한 재활 센터도 세웠다. 나라도 그의 공을 인정했다. '대한민국 1호 체육유공자' 김소영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재활지원센터장(46)이었다.

김 센터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체조 메달 기대주였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직전 불운이 찾아왔다. 이단 평행봉 훈련 중 추락했다. 척수 장애 1급. 사지가 마비됐다. 운동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공부밖에 없었다. 그냥 딱히 학과 공부가 필요하지 않으면서 '반복 훈련'의 효과가 큰 것을 찾았다. 영어였다. 계속 반복 훈련을 했다.

공부를 하다보니 막연했다. 뭔가 목표가 필요했다. 미국 유학이었다.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필사의 노력 끝에 200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공부의 방법을 몰랐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냈다. 5년만에 상담학 학사모를 썼다.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직장이었다. 다들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겁먹지 않았다. 공부도 해냈다. 불가능한 것보다 가능한 것이 더 많았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센터장으로 도우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김 센터장은 23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스포츠콘서트에서 30년 후배들을 만났다. 불의의 사고가 찾아온 딱 그맘 때 고등학교 학생 선수들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핵심만 말했다. "학생 선수라고 하면 다들 공부를 2차적인 것 즉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공부가 필수고 운동이 선택이다. 그만큼 공부는 중요하다"고 했다. 목표 설정의 중요성도 제시했다. 그는 "아마도 선수들 대부분이 올림픽 메달 획득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메달 획득 후 찾아오는 공허를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지나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 그래서 목적이 있는 목표를 세워야만 어떻게 살 것인지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목적이 있는 목표를 세우면 내가 삶을 즐길 수 있다. 나무가 풍성해도 열매가 없으면 반쪽이다. 인생 계획을 할 때 모든 과정들이 열매를 맞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고래 한 마리'를 얘기했다.

"이런 시가 있어요. '푸른 바다에는 고래가 있어야지. 고래 한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오늘 모인 학생들 모두 마음 속에 '고래 한 마리'씩 꼭 키웠으면 좋겠어요."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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