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건희'삼성스포츠 신경영'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6-16 13:51 | 최종수정 2013-06-18 08:04



"스포츠는 사람이다. 95%가 사람이다. 인격을 갖춘 감독, 호랑이같은 코치, 열정의 선수, 이렇게만 구성되면 제패한다."(1996년 7월 18일) "팬들에게 멋있게 이기고 지는 것을 보여주고, 삼성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임하면 된다."(1982년 7월 26일) "그룹의 협동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스포츠팀을 활용하라."(1991년 2월 18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스포츠 관련 어록이다. 스포츠에 대한 삼성 수장의 인식을 보여주는 이 어록들은 2012년 단행된 삼성스포츠단 가치 리모델링의 단초가 됐다. 그리고 '감동' '활력' '신뢰'라는 삼성스포츠단의 가치는 삼성 기업문화 변화의 시작점이 됐다. '스포츠 신경영' 2년째, 현장에서 또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 '신경영', 스포츠에게 길을 묻다

스포츠조선이 입수한 '삼성스포츠 철학 및 R&R' 문서에는 지난 2011년부터 삼성그룹이 준비한 스포츠단 리모델링의 배경이 명시돼 있다. 삼성은 2011년 초 그룹내 스포츠단의 브랜드 통합 관리 작업에 착수했다.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센터에 컨설팅을 의뢰했고, 이 결과에 따라 제일기획에서 CI 작업을 진행했다. 이 회장의 어록,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감동' '활력' '신뢰'라는 3가지 가치가 정립됐다. 삼성 야구단, 삼성전자 축구, 농구단, 삼성화재 배구단, 삼성생명 탁구, 레슬링단 등 13개팀을 중심으로 그룹 전체를 하나의 정신으로 묶어내는 작업이었다. 재벌가 삼성이 지닌 '일등주의'의 차가운 이미지, 공정-기업윤리 관련 이슈로 인한 불편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확립해야 할 시점, 스포츠를 최선의 '신경영 도구' 삼았다. 인간미 넘치는 삼성의 이미지,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 문화, 활기차고 건강한 조직 문화 및 사회공헌 확대, 산적한 숙제들에 대한 정답이 스포츠 안에 있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둔 시기에 그룹 윗선에서 발빠르게 움직였다. 당시 김순택 전 부회장이 실장으로 있던 미래전략실에서 스포츠단 리모델링 작업을 직접 진행했다. 삼성 스포츠단의 공통가치를 만들고 그룹 내에 전파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미래전략실장은 전통적으로 삼성그룹 '2인자'를 상징하는 요직이다. 스포츠에 대한 이 회장의 애정과 의지가 적극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의 스포츠사랑은 같하다. 유년기엔 레슬링을 즐겼다. 서울사대부고 시절 2년 가까이 레슬링선수로 활약했고 1959년 전국대회 웰터급에서 입상한 전력까지 있다. 1970~1980년대엔 탁구인 출신 박성인 삼성스
포츠단 전 고문, 김충용 대한탁구협회 부회장과 탁구를 즐겼다. 이 회장과 랠리를 함께 한 한 탁구인은 "탁구 스타일도 대단히 공격적이다. 상당히 잘 치신다"고 귀띔했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소문난 스포츠 마니아다. 프로야구 현장에서 자녀들과 틈틈이 나들이를 즐긴다. 운동실력도 수준급이다. 어린 시절부터 탁구, 테니스를 즐겼다.

'스포츠 신경영' 2년, 삼성의 변화는?

스포츠를 통해 소통하는 '스포츠 신경영'이 2년째를 맞았다. 서서히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스포츠의 중요성을 단순한 경기력이 아닌 기업문화로 재해석해냈다. '감동' '활력' '신뢰'라는 가치를 신경영에 적극 반영했다. 지난해 전사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 웰니스 프로그램'을 첫 도입했다. 삼성스포츠단이 주관한 축구, 농구, 배드민턴, 테니스 동호인 대회에는 총 39개사, 281개팀, 2만3000여 명이 참가했다. 20대 신입사원부터 40~50대 간부, 임원진이 그라운드, 코트에서 함께 발을 맞춘다. 축구대회는 4~10월까지 연중 리그 방식으로 치러진다. 박성훈 삼성토탈 부사장, 박중흠 삼성중공업 부사장, 성학경 삼성전자 전무, 김대희 삼성SDS전무, 이교성, 손상락, 김효섭 삼성중공업 전무 등이 그라운드에서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특히 이욱승 삼성엔지니어링 전무의 활약이 이슈가 됐다. '플랜타스B'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다. 최근 2경기 연속 결승골을 쏘아올렸다. '활력' 넘치는 '전무님'의 솔선수범 파이팅은 어린 직원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라운드에서 발을 맞추며 자연스레 '신뢰'가 형성됐다. 15~16일 처음 진행된 삼성 동호인탁구대회에선 이색 참가자가 줄을 이었다. 삼성전자 일본인 단체팀, 삼성반도체 인도 에이스의 활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남녀노소, 상하좌우, 국경을 넘어 스포츠맨십으로 하나가 됐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운동 프로그램 'S-워킹' 역시 호응이 높다. 매일 운동량이 앱에 기록되고, 사내 친구랭킹이 자동산출된다. 운동량은 '활력' '신뢰' '감동' 항목별 배지로 전환된다. 10개를 채울 때마다 기부할 수 있고, 이렇게 적립된 전사원의 배지는 연말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운동 에너지'를 '기부 에너지'로 바꾼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삼성이 추구하는 인재상에도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해 말 신입사원 공채부터 스포츠 경력 항목이 따로 마련됐다. 스포츠 경력을 인사에 반영하고 있다.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을 지향하는 학교체육의 변화를 기업 경영에 반영한 첫 시도다.

'스포츠 신경영' 향후 삼성이 가야할 길은?

얼마 전 미국 단기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현정화 전 대한탁구협회 전무에게 느낀 점을 물었다. "1등보다 중요한 건 함께 잘사는 것이다. 나혼자 잘살면 무슨 소용이 있나. 다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고 했다. 세계 1등만 외치던 올림픽 챔피언의 깨달음이다. 1등도 중요하지만,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 사원들의 '스마트 웰니스'만큼 엘리트 선수단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최근 체육계의 최대 화두는 '공부하는 선수'와 '선수 은퇴 이후의 삶'이다. 삼성 선수들은 현역시절 누구보다 행복하다. 은퇴 후 설계, 삶의 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삼성의 시도가 향후 다른 실업팀 선수들에게도 가야할 길이 될 것이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 및 후원도 계속돼야 한다. 혹자는 한국 스포츠계의 위기를 말한다. 런던올림픽에서 경기력이 정점을 찍었다는 주장이다. 삼성의 아마추어 스포츠단 창단은 2000년 마라톤 중심의 육상단 창단 이후 멈춰섰다. 리딩그룹답게 위기의 아마추어 종목에 대한 후원을 늘려야한다. 탁구, 배드민턴, 수영 등 종목 등에서 장애인 스포츠 '어울림' 실업팀 창단도 유의미하다. 유승민, 주세혁, 이상수, 서현덕 등 걸출한 선수들과 장애인선수들이 한솥밥을 먹으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단발적인 봉사, 기부 이벤트도 좋지만, 생활속에서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나눔이 필요하다.

IOC위원인 이건희 회장에게 기대하는 바도 크다. 인천아시안게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평창동계올림픽 등을 앞두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외교력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올림픽 패밀리' 삼성의 이름으로, 대한체육회 부회장의 자격으로 더 적극적인 행보가 요구된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CEO답게 가슴 뛰는 현장에도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주길 바란다. 야구 축구뿐 아니라 레슬링 탁구 배드민턴 등 아마스포츠 현장에서 어느날 갑자기 마주치는 '반전'은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큰힘이 될 것이다.

삼성은 지난 8일 '신경영 20주년'을 맞았다. 이건희 회장은 전사원에게 직접 발송한 이메일을 통해 '처자식 빼고 다 바꾸자'던 20년 전 '신경영'의 새 출발을 언급했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더 무거워졌으며, 삼성에 대한 사회의 기대 또한 한층 높아졌습니다. 우리의 이웃, 지역 사회와 상생하면서 다함께 따뜻한 사회,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갑시다. 이것이 신경영의 새로운 출발입니다."

'감동-활력-신뢰, 스포츠를 통해 더 나은 개인의 삶과 사회를 만든다'는 스포츠단의 가치와 일맥상통했다. 스포츠를 통한 소통과 사회공헌은 가장 자연스럽다, '스포츠 신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될 이유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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