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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아름답지 못한 리듬체조 현장, 이대로는 안된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1-10-11 15:22


◇10일 김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체전 리듬체조 경기에서 12명의 기술위원들이 심판을 보고 있는 모습.

지난 9월 '요정' 손연재(17·세종고)가 2회 연속 올림픽 진출의 쾌거를 일궜다. 세계 정상급의 아름다운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10일 마주한 전국체전 리듬체조 현장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경기 직후 이뤄져야 할 대학부 순위 발표가 30분 이상 늦어지며 구구한 억측을 낳았다. 현장 팬들에게 공개된 점수과 공식 기록지의 점수도 일치하지 않았다. 금메달 김윤희(20·세종대)는 축하받지 못했고, 은메달 신수지(20·세종대)는 마지막 무대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신수지는 경기 직후 자신의 미니홈피에 '드러운 X들아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리듬체조 어른'들의 미숙한 경기 운영이 화를 불렀다.


◇신수지가 10일 전국체전 직후 자신의 미니홈피에 '드러운 X들아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라는 격렬한 글을 올렸다.  사진 출처=신수지 미니홈피 캡처
스마트 시대에 아날로그 경기운영 '눈살'

이날 신수지, 김윤희가 박빙의 승부를 펼친 대학부 순위 발표는 30분 넘게 지연됐다. 마지막 1-2위를 결정지을 김윤희의 마지막 곤봉 점수가 전광판에 뜨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어처구니 없는 경기 운영으로 의혹을 키웠다. 후프-볼-리본 종목에서 김윤희에 전광판 점수로 0.420점 앞섰던 신수지는 마지막 곤봉에서 무려 0.450점을 뒤지며 금메달을 내줬다.

심지어 전광판에 공개된 점수와 공식 기록지의 점수도 달랐다. 김윤희의 후프 점수 25.130점은 기록지에 25.425점으로 기록됐다. TV 중계와 현장 취재진은 당연히 전광판 점수를 공식기록으로 받아들였다. 기술위원들은 "전광판 입력자의 단순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동네 학예회가 아닌 체전이다. '실수'였다면 당연히 현장에서 바로잡았어야 옳다.

리듬체조 종목에서 심판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채점 전 과정에서 정확성과 투명성은 생명이다. 리듬체조 심판은 총 12명이다. 신체난도(D1)-수구난도(D2)를 평가하는 난도 심판(D) 4명, 안무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예술심판(A) 4명, 실제 연기에서 기술적 결함을 평가하는 실시심판(E) 4명으로 구성된다. 현장에서 지켜본 리듬체조 채점 방식은 놀랄 만큼 구시대적이었다. 12명의 심판들은 일일이 손으로 점수를 기록했고, 이를 계산기로 합산한 기술위원장이 경기장 바깥의 기록실에 전달하면 비로소 전광판에 점수가 떴다. 컴퓨터에 점수를 동시입력하면 모니터에 점수가 뜨는 명쾌한 방식이 아니었다. 느리고, 불투명하고, 부정확했다. 수동식 계산, 입력 모든 부분에 오류의 가능성이 상존했다.


◇신수지가 10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백일루션 7회로 마지막 곤봉 연기를 마무리 한 후 흘러내린 머리를 잡은 채 매트 밖으로 나가고 있다.
"잘못한 것 없다"면서 "잘 써주세요?"

이날 더욱 문제가 된 건 경기 운영상의 실수 자체보다 이에 대처하는 대한체조협회 기술위원들의 자세였다. 순위 발표가 지연되며 괜한 의혹을 양산한 데 대해 "우리도, 협회도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는 고자세로 일관했다. "손으로 일일이 쓰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점수를 재확인하느라 발표가 늦어졌다"는 해명을 반복했다. 문제는 이날처럼 결과 발표가 30분 넘게 지연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날 기술위원들의 최종책임을 맡은 이연숙 기술위원장은 의혹을 제기하는 취재진에게 "앞으로 리듬체조 담당 계속하실 거죠?"라는 반협박성 코멘트까지 던졌다. 매끄럽지 못한 경기 운영에 대해 겸허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당당했다. 이 위원장은 "잘 써주세요, 이상하게 쓰기만 해봐~"라는 반말 섞인 인사를 건네며 현장을 떠났다.

이번 전국체전에 참가한 선수는 대학부 5명, 고등부 8명으로 총 13명에 불과했다. 대학부 5명 가운데 신수지와 김윤희는 내년 프레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선수층은 더 얇아질 전망이다. 고등부 경기에선 예상대로 손연재가 전종목 27점대를 기록하며 금메달(109.100점)을 목에 걸었다. 2위 이다애(89.900점) 3위 이수린(88.425점)과 무려 20점 넘게 차이가 났다. '신수지-손연재' 이후가 없다. 올림픽 2회 연속 진출에 도취돼 있을 때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손연재 효과'에 힘입어 10일 체전 현장엔 관중도 취재진도 넘쳐났다. 모처럼 찾아온 리듬체조 르네상스다. 리듬체조계의 자기성찰이 절실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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