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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시장이 구입한 작품" '삼눈이'김민지 작가의 V작렬 하루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2-06-13 15:43 | 최종수정 2022-06-14 10:02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애인체육회장)이 '체조 국가대표' 출신 김소영 서울시의원이 임기 마지막 행사로 마련한 '김민지작품전'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즉석에서 구입을 결정한 김민지 작가의 작품 '가끔은 눈물이 나' 앞에서 작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장님이 제 그림 사주신 거요? 실감이 안나요."

지난 10일 서울특별시의회 본관 로비에서 열린 '김민지 작품전'. 눈두덩 살이 많아 '숫자 3'같다며 스스로 '삼눈이'라는 별명을 지은 김민지 작가(21)가 눈웃음과 함께 연신 V포즈를 취해보였다.

이날 작품전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체조 국가대표 출신 김소영 서울시의원이 제10대 서울시의회의 마지막 정례회 개회식에 맞춰 기획한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뇌병변 장애인인 김민지 작가는 서울나래학교 전공과 1회 졸업생이다. 어릴 때부터 공책에 그림을 그리며 외로운 시간을 버텼다는 김 작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학생 희망 일자리' 인턴십을 거쳐 올해부터 나래학교 도서실에서 사서보조로 일하고 있다. 작품 소재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서 '휠체어 소녀'의 좌충우돌 일상이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다 꾸벅꾸벅 조는 그림도, 로봇이 내 일 좀 대신해줬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나 대신 로봇'도 공감백배다. 만원 지하철 문앞에서 절박하게 뭔가를 외치는 작품 제목은 '나도 타야 해요', 휠체어에서 우당탕탕 넘어진 그림 밑엔 '아이쿠'란 제목을 달았다. 김 작가는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2개월만인 이날 서울시의회에서 의미 있는 작품전을 열었다. '김민지 작품전'을 마련한 김 의원은 "시의원 4년 임기를 끝내며 의미 있는 전시를 하게 됐다"면서 "장애 예술인 꿈나무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격려받고 더 큰 꿈을 꾸는 기회가 되길. 무엇보다 시의원, 시 직원, 공무원들이 장애인들의 일상을 담은 이 그림들을 보면서 장애를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민지 작가의 대표작 '가끔은 눈물이 나' 앞에 한참을 머물던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애인체육회장)이 즉석에서 작품구입을 결정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유쾌한 자화상에 본회의장 앞 전시장에 무심코 들른 시의원들의 입가엔 미소가 피어났다. '서울시장애인체육회장' 오세훈 서울특별시장도 전시회장을 찾았다. 김소영 의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보다 김 작가의 대표작 '가끔은 눈물이 나'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석양이 뉘엿한 도심 빌딩 옥상에서 '휠체어소녀'가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모습. 가끔은 혼자 펑펑 울고 싶은 모두에게 진한 공감을 자아내는 작품이 오 시장의 마음에 닿았다. "시장실에 그림 하나 걸어두시면 좋을 것같다" 김 의원의 현장 제안에 오 시장은 "그럼, 이걸 사야죠" 했다. 오 시장은 즉석에서 구입을 결정한 후 김 작가와 큰 키를 한껏 낮춘 채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도 김 작가의 포즈는 승리의 'V'였다.


김민지 작가와 어머니 이소정씨.
소감을 묻자 김 작가는 "시장님이 연예인은 아니지만, 아~ 실감이 안나요"라며 예의 '삼눈이'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우리 나래학교 친구들 모두가 자랑스러워요"라고 답했다.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김 작가는 "다른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들이 바라봐주고 관심을 주는 것이 좋아요"라고 답했다. "예전엔 휠체어 장애인으로만 봤는데 이제 장애인 작가로 봐주시니 좋아요. '김 작가님'이라는 호칭 너무 좋아요"라며 웃었다. 그림들이 어쩐지 '웃프다(웃긴데 슬프다)'는 평가에 김 작가는 "제 일상이 그랬어요. 웃긴데 슬프죠. 제 '웃픈' 일상을 담은 거예요"라고 했다. '가끔은 눈물이 나'의 사연을 묻자 김 작가는 "누구나 슬픈 날이 있으니까요. 실용무용을 전공하는 동생 공연을 보러가고 싶었는데 휠체어석이 없어서 못갔어요. 동생 춤추는 걸 직접 보고 싶었는데 외롭고 슬펐어요"라고 답했다. 척수장애인인 김소영 의원은 "사실 휠체어 장애인은 혼자 마음껏 울 공간조차도 없다. 사실 옥상에도 올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저 그림은 어쩌면 '바람'이다. 외롭고 힘들 때 혼자 옥상에 올라가 맘껏 울고 싶은 '바람'"이라고 해석했다.

'장차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말고 '조금'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어머니 이소정씨는 "딸이 자랑스럽다. 이 재능을 통해 독립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혼자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그림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엄마, 그럴려면 이젠 '코믹물' 말고 '감동물' 그려야 해"라는 '작가님'의 야무진 계획에 웃음이 터졌다.


왼쪽부터 김정선 서울시교육청 특수교육과장, 김소영 서울시의원, 김민지 작가, 함혜성 서울시교육청 평생진로교육국장.
나래학교 초대교장 출신으로 이날 함혜성 평생진로교육국장과 함께 작품전을 찾은 김정선 서울시교육청 특수교육과장은 애제자의 성장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민지 작가가 더 큰 무대에서 성장하고 인정받는 모습이 뿌듯하다"면서 "학창 시절의 예술, 체육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이를 통해 평생 취미, 여가 활동도 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의 예술, 체육활동이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 의회 마지막 행사로 의원님들께서 장애학생들의 작품을 보는 건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김소영 의원님께서 장애학생들의 작품이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왼쪽부터 김민지 작가 어머니 이소정씨, 김소영 서울시의원, 김민지 작가, 양한재 나래학교교장.

양한재 나래학교 교장은 "김민지 작가는 장애학생들의 롤모델이다. 나래학교엔 가장 중증의 장애학생들이 온다. 모두가 되기는 힘들지만 분명 희망이 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어떤 선생님들은 '세금 내는 장애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말씀도 하신다. 스스로 자립해 자신의 길을 열어가게 하는 것, 김 작가같은 학생을 더 많이 배출하는 것이 특수교사로서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한연숙 나래학교 진로부장 교사는 "중증장애학교에서 보기 드문, 정말 특출난 재능을 가진 학생이다. 학교에서 늘 자신보다 부족한 아이들을 더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교사로서 오늘 같은 자리가 정말 기쁘다.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매일매일, 보통의 일상과 발칙한 상상이 모두 작품의 소재라는 김민지 작가는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시장님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키 엄청 크게, 얼굴도 멋지게… 제 작품과 함께 선물로 보내드리려고요"라고 했다. V자처럼 행복한 하루, '삼눈이' 눈웃음이 또 한번 작렬했다.
서울시의회=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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