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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포츠계의 큰 별이 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자 IOC의 공식 후원사의 수장으로서 한국을 넘어 세계 스포츠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 회장은 1996년 7월 애틀란타올림픽 기간 중 열린 제 10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위원에 선출된 후 20년 넘게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서울사대부고 시절 레슬링선수로 활약했던 이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장(1982~1997년)을 맡아 올림픽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일구며, 대한민국 레슬링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이후 IOC위원에 당선되며 IOC와 올림픽을 공식후원하는 올림픽 패밀리로서 국위를 선양했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진심을 다해 후원하는 CEO의 품격을 유지해 왔다. 이 회장이 일군 삼성스포츠단은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인기종목뿐 아니라 탁구, 레슬링, 테니스, 럭비, 배드민턴, 태권도, 육상 등 비인기종목, 기초종목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를 키워내며 대한민국이 세계 톱5 스포츠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실격 번복 직후 당일 저녁 펼쳐진 박태환의 결승전에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온가족들이 함께 관중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스포츠를 향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줬다. 런던올림픽 직후인 2013년 후원 없이 외롭게 훈련에 전념하던 박태환을 삼성전자 휴대폰 '갤럭시' 모델로 기용해 기를 살린 일화도 유명하다.
일본 와세다대 시절부터 이어진 이 회장의 야구 사랑 역시 특별했다. 1982년 프로 원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주를 지냈고, 이 회장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삼성은 프로야구 명문구단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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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역사도 직접 발로 뛰며 이뤄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까지 1년반 동안 무려 11차례, 170일간 해외 출장 일정을 소화했다. 100여 명의 IOC위원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만나며, 발로 뛰는 유치 열정으로 평창의 꿈을 이뤘다. 평창은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따돌리고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토록 간절했던 평창올림픽을 현장에서 지켜보지 못했다. 2014년 5월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이 회장은 이후 치료에 전념했고, 2017년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IOC위원 사퇴 이후 기나긴 투병 기간 내내 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면면히 이어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IOC와 첫 인연을 맺은 삼성전자는 1997년 IOC와 톱(TOP) 올림픽 파트너 후원사가 됐다. 올림픽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IOC와 인연을 맺은 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이후 2028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까지 30년간 올림픽 정신을 이어가는 IOC 최고 레벨의 후원사의 의리를 지켰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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