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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확진→코로나 초비상'신치용 진천선수촌장 "은행간 선수와 '영통'까지 하고있다"[인터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20-03-19 15:43


신치용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이 지난 1월 훈련개시식에서 엄지를 치켜들고 도쿄올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스포츠조선DB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 우려가 현실이 됐다. 헝가리에서 귀국한 펜싱 여자에페 국가대표 선수 8명 중 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 1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랑프리 및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여자에페 대표팀 중 A선수가 17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인후통 증상으로 자택 근처 울산 중구선별진료소를 찾았다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국가대표 선수 중 최초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이었다. 부다페스트 현지에서 함께 훈련하고, 함께 이동하고, 함께 먹고 자며 인천공항을 통해 함께 귀국한 남녀 에페대표팀, 남자 사브르 대표팀-지도자 30명 전원이 자가격리됐다. 18일 A선수와 겨우내 동고동락한 여자 에페 선수들의 확진 소식이 줄을 이었다. B선수는 18일 경기도 남양주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B선수의 룸메이트인 C선수는 친구와 충남 태안 여행 중 18일 태안 선별진료소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선수의 룸메이트인 D선수는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고, E선수도 음성 판정이 나왔다.

국가대표 펜싱대표팀에서 확진자가 잇달아 나오면서 진천국가대표선수촌도 초비상이 걸렸다. 진천선수촌은 일찌감치 '베테랑' 신치용 선수촌장의 진두지휘에 따라 지난 2월부터 도쿄올림픽 출전 종목의 모든 선수들이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고립 생활'을 해왔다. 4주째 외출, 외박도 전면 금지하고 있다. 국제대회에 다녀온 선수들은 귀국 후 자가격리,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야 선수촌에 입촌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엄수해왔다. 최근 귀국한 펜싱, 복싱, 배드민턴 대표팀도 선수촌에 바로 복귀하지 못했다. 여자펜싱 대표들도 선수촌 밖에서 확진판정을 받았다. 여자펜싱 확진자 B선수의 경우 선수촌에 두고 온 차를 빼기 위해 16일 선수촌을 찾았다. 대한체육회 직원이 입구에서 차키를 받아 선수촌 밖으로 차를 빼줬다. 질병관리본부는 확진자 2차 접촉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두지 않았지만 신 촌장은 17일 A선수의 확진 판정 즉시 이 직원에 대해서도 즉각 자가격리 조치를 취했다.

신 촌장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진천선수촌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하지만 한 선수만 잘못 돼도 선수촌 폐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국가대표 전체가 갈 곳을 잃게 된다.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선수촌 인근의 대소, 혁신도시쪽에서 확진자들이 나오고 있다. 작은 동네라 단골식당, 카페도 다 거기가 거기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선수, 지도자가 나온 후 외출은 더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외출 외박 금지 4주차를 넘기며 혈기왕성한 어린 선수들은 '감옥생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신 촌장은 "이번 주 들어 선수촌 건의함에 '외박 좀 보내주세요' '저 진짜 미칠 것같아요'라는 쪽지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가슴에 찬물을 부어도 펄펄 끓을 청춘들인데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겠나." 손자뻘 선수들을 향한 안쓰러운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코로나 철통방어' 속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속출하고 있다. 지도자도, 선수도 외출 허락을 받으려면 '호랑이선생님' 신 촌장의 심층 면담을 통과해야 한다. 워낙 엄격한 기준 탓에 외출 허락을 득하는 선수는 축하를 받을 정도다. 신 촌장은 최근 외출한 선수와의 '영통(영상통화)' 에피소드를 전했다. "어제 한 선수가 학자금을 대출받으러 은행을 꼭 가야 한다고 촌장실에 왔더라. 은행 간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냐고 했더니 '영상통화'를 하자더라. '그래 좋다.' 은행에 간 선수와 '영통'을 했다. 은행 외 다른 곳은 절대 안간다는 약속을 받고 이동 시간까지 쟀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선수가 귀촌 보고를 하러 방에 왔는데 서로 웃고 말았다.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고 사과했다."

신 촌장 역시 외출, 외박 금지 4주차다. "선수, 지도자들이 아무 데도 못가는데 내가 나가면 되겠느냐"고 했다. 훈련장, 식당, 숙소를 다람쥐 쳇바퀴처럼 왔다갔다해야 하는 답답한 일상,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응원의 마음'뿐이다. "지도자, 직원들에게 늘 당부한다. 선수들이 제일 힘들고 예민할 때다. 절대 싫은 소리 하지 말고, 절대 인상 쓰지 마라. 늘 따뜻하게 잘해주고, 웃으면서 하라고."

펜싱에서 확진자가 3명이나 나오면서 신 촌장은 또 고민이 생겼다. 선수들의 유일한 '숨통'이었던 주말 면회를 계속 허용해야 할지 고민중이다. 주말이면 진천선수촌 입구 웰컴센터엔 50여 명의 선수가족, 친지, 친구, 애인들이 몰려든다. 이산가족 상봉을 방불케 한다. "아기를 데리고 온 선수 아내, 부모님들은 선수들을 만나자마자 펑펑 울기도 한다"며 애틋함을 전했다. 웰컴센터 2층에 마련된 만남의 공간에서 가족, 애인들이 싸온 음식을 나누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청춘남녀 선수들에겐 모처럼 만난 애인과 가족을 한 번 안을 틈도, 사적인 공간도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이래저래 참으로 힘든 시절이다.

신 촌장은 "이 시련이 언제쯤 끝이 날지,한주 한주 이어지는 불확실성이 정말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4주를 힘들게 버텼는데 조금만 더 함께 버텨보자고 서로 격려하고 있다. 함께 이겨내야 한다. 잘 이해하고 따라주는 선수, 지도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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