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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없는 결실은 없다. 불과 8년 전만 해도 한국은 썰매 불모지였다. 보유한 썰매도 없어 국제대회에 나가면 외국선수들의 연습용 썰매를 빌려 타야 했다. 실내 훈련장도 없어 아스팔트 위에서 파일럿 훈련을 해야 했다. 1000만원을 호가하는 썰매 날 하나를 구매할 돈도 없었다. 그러나 2011년 여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뒤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여러 기업들의 후원과 대한체육회의 도움으로 과학적인 훈련과 해외 전지훈련이 가능해졌다. 투자가 이뤄지자 선수들은 실력발휘를 했고 결국 우리가 바라던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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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재출발의 원동력이 됐던 '치유의 눈물'이다. 파일럿 원윤종은 지난 19일 브레이크맨 서영우과 호흡을 맞춰 출전한 봅슬레이 2인승에서 6위에 그쳤다. 현장에선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숙소에 도착하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이 감독은 "사실 2인승이 끝나고 원윤종이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 달래주고 싶었는데 그 눈물로 2인승에서 못했던 것을 다 치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냥 놔뒀다. 덕분에 4인승 때 실수 없이 잘 탄 것 같다. 2인승의 한을 풀었다"고 전했다.
끝으로 '신의 한수'가 있었다. 베테랑 브레이크맨 김동현의 대회 직전 4인승 합류였다. 이 감독은 "사실 김동현에게 (브레이크맨으로 합류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왔다. 김동현도 파일럿 생활을 5~6년 했던 선수다. 자존심을 접고 결단을 내려준 것이다.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끝'이 아닌 '시작'이다. 서영우는 "8년간 많은 일 있었다. 금보다 값진 은"이라며 활짝 웃었다. 전정린은 "메달 무게가 무겁다고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무겁다. 이제 시작이다. 베이징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원윤종은 "우리 네 명 뿐만 아니라 감독, 코치, 전담팀, 연맹, 후원, 후배 동료들이 한 팀이라고 본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김동현은 "지난 10년간 뿌린 씨앗을 거뒀다. 앞으로의 10년을 또 생각하겠다"고 전했다.
똘똘 뭉쳐 이뤄낸 아시아의 새 역사. 온갖 역경 끝에 자랑스러운 첫 걸음을 내디딘 한국 봅슬레이가 세계를, 그리고 미래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봅슬레이 강국이다. 평창=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