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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그뤠잇!]단일팀 골리 신소정, 희망을 지켜낸 '헌신의 미소'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8-02-23 05:20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어느 덧 폐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길고 길었던 대장정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땀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올림픽이 '지구촌 축제의 장' 같지가 않습니다. 감동 드라마의 연속인 '순수한 스포츠 극장' 같지가 않습니다. '특혜논란' '갑질논란' '진실논란'…. 무슨 '논란의 올림픽'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선수단의 노력과 땀, 눈물이 묻히고 있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스포츠조선은 남은 기간 '올림픽 정신'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하나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도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평창 그뤠잇!]은 우리 선수단의 땀과 환희, 눈물이 얼룩진 '진정한 올림픽 이야기'입니다. <스포츠조선 평창올림픽 취재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올림픽파크 코리아하우스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새라 머리 감독과 신소정, 박종아, 랜디그리핀, 박윤정이 함께 참석해 기자회견에 임했다.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신소정.
강릉=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02.21
"야! 내가 군대에 있을 땐 말이야!"

젊으나 나이 먹으나 남자들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는 군대다. 백미는 극한의 훈련. 수백m 높은 곳에서 공수낙하를 했느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몇 백km를 걸었느니, 또 사격 '만발'을 쐈느니 등이다. 이 중에서도 꼭 빠지지 않는 건 행군 때 짊어지는 군장의 무게. 참 다양하다. 어떤 이는 15~20kg, 또 어떤 이는 40kg 또 50kg. 정확한 질량이 어찌 됐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단 하나다. '나 이만큼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그 점 하나만 알아달라.' 그 애절함(?)은 대체로 듣는 이들로부터 외면당하곤 한다. "아! 또 그 얘기!"

아이스하키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스케이트 질주. 손에 땀을 쥐는 격한 몸싸움. 시선을 현혹시키는 유연한 퍽 컨트롤. 그물을 찢을 듯 빠르게 뻗어가는 슈팅. 아이스하키의 매력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과 일본의 경기가 14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렸다. 단일팀이 1대4로 패한 가운데 투혼으로 추가골을 막은 신소정과 엄수연이 포옹을 하고 있다.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2.14/
하지만 이 묘미에서 철저히 배제된 자리가 있다. 골리다. 달릴 수 없다. 스틱 한 번 시원하게 휘두를 수도 없다. 골리가 할 수 있는 건 시속 100~120km로 날아오는 두께 2.54cm, 무게 170g 경질 고무재질, '총알' 퍽에 몸을 날리는 것 뿐이다. 골리의 존재 자체가 '헌신'이다. 할 수 있는 건 매우 제한돼있는데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장비 무게도 더 무겁다. 골리 장비는 20kg에 육박한다. 스케이터는 11kg 정도다. 군필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군장의 무게에 버금가는 장비를 착용하고 20분 씩 3피리어드 동안 육박전을 벌인다.

이 일을 대표팀에서 17년 째 하고 있는 이가 바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골리 신소정(28)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신소정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서 단일팀이 치른 5경기 전경기에 출전했다. 출전시간은 297분01초. 총 237개의 슈팅과 맞닥뜨렸다. 경기당 47.4개다. 신소정은 온몸을 날렸다. 극심한 통증. "그래도 요즘엔 장비가 좋아서 멍은 생갭다 많이 들지 않아요"라며 웃어보이지만, 경기 후 그는 '반 환자'다. 트레이너들이 오랜 시간 몸을 풀어줘야 한다. 하지만 신소정은 고충을 토로하지 않는다. "솔직히 힘이야 들죠. 아프기도 하구요. 그런데 다른 선수들도 다 함께 하는 거에요. 트레이너 선생님들께서 잘 관리해주셔서 저는 괜찮아요."


이번 대회 '최약체' 단일팀은 대회 5전 전패를 했다. 압도적인 전력 차. 신소정은 슈팅 폭우 속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헛된 몸짓은 아니었다. 단일팀은 조별리그 1, 2차전 스위스, 스웨덴전서 연달아 0대8로 완패했다. 하지만 다시 스위스를 만나 펼쳤던 순위결정 1차전에선 0대2로 졌다. 신소정의 '선방쇼'가 있었다. 그는 웃으며 공을 돌렸다. "앞에서 동료들이 압박을 잘 해줬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과 일본의 경기가 14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렸다. 골리 신소정이 일본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2.14/
신소정의 밝은 미소 속엔 애틋함도 있다. 그는 가슴에 아버지를 품고 뛴다. 신소정은 'Always be with me(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헬멧을 써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의미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선 마스크 안에 적어뒀다. 특정 인물을 새겨선 안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 때문이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이야기하던 신소정은 지난 14일 일본전(1대4 패)을 마친 뒤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해요"라고 했다. 혼자가 아닌 둘, 아버지를 품고 있기에 신소정은 늘 두려움 없이 몸을 내던질 수 있다.


사진제공=신소정

사진제공=신소정
이번 올림픽 대세는 여자 쇼트트랙과 여자 컬링이다. 뛰어난 실력은 물론 매력적인 외모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경기 중 그들의 생생한 표정을 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스하키는 불가능하다. 마스크에 가려진다. 골리는 말할 것도 없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슬쩍 들어올린 마스크 사이로 땀에 흠뻑 젖은 민낯이 드러난다. 그 모습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의 얼굴도 궁금했다. 그래서 신소정에게 기획 취지를 설명하고 사진을 요청했다. 신소정이 크게 웃는다. "아! 저를요? 감사합니다~!" 전화 통화지만 환한 미소가 느껴진다. 굳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돋보이는 화사한 '헌신의 미소' 뒤에 한국팀의 골대가 있다.


강릉=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사진제공=신소정



사진제공=신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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