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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한국 여자 조정의 에이스 지유진(26·화천군청)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 1년여간 고향인 강원도 화천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했다. 부모님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훈련만 했다. 지유진은 "외박도 없이 주말에도 훈련을 소화했다"고 했다. 하루에 세 차례(새벽, 오전, 오후) 배를 탔다. 저녁밥을 먹고도 쉴 틈이 없었다. 야간에는 웨이트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묵묵히 버텼다. 자연스럽게 '훈련벌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흘리고 또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결국 아시아의 조정 여자 경량급 싱글스컬 여왕으로 등극했다. 지유진은 25일 충주 탄금호 조정경기장에서 벌어진 대회 결선에서 8분1초00의 기록으로 가장 빨리 물살을 갈랐다. 세 번째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금빛 레이스를 펼쳤다. 지유진은 "생애 첫 국제대회였던 2006년 도하 대회 때는 세 달 전에 대표팀에 들어가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었다"며 "당시 경기를 뛰고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지유진은 화천중 1학년 때 조정 선수가 됐다. 당시 또래보다 큰 키(1m68)를 눈여겨 본 박희재 체육교사의 권유로 노를 잡았다. 혹독한 대가가 따랐다. 또래들이 사는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고3 때 국가대표가 됐다. 9년간 조정만 했다. 다른 것도 해보고 싶었다. 수업도 받고, 친구도 사귀고 캠퍼스 생활도 하고 싶었다.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던 시기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도 기대주가 아니었다. 지유진은 "당시 메달권이 아니었다. 아무도 기대를 안하더라. 그래서 '두고봐라, 내가 반짝한다'며 마음을 먹었는데 은메달을 땄다"고 했다. 4년이 흘렀다. 어느덧 여자 조정의 에이스가 돼 있었다. 지난해 초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조정월드컵 1차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획득,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같은 해 정작 안방에서 펼쳐진 충주세계조정선수권에서는 세계 수준과의 격차를 확인했다. 하위권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다. 올해 반전을 이뤘다. 5월 일본에서 벌어진 아시아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부담이 어깨를 눌렀다. 지유진은 "이번에는 주위에서 너무 큰 기대를 하니깐 '금메달을 못따면 어떻게 하나'란 부담이 생겼다"고 했다.
지유진은 이날 은메달을 따낸 홍콩의 리카만(28·8분6초60)과 2006년 도하 대회 때부터 친구가 됐다. SNS로 연락하다 국제대회에서 만나면 반갑게 얘기를 나눈다. 지유진은 "리카만이 어느 구간에서 지치고, 페이스를 잡는지를 알고 있었다"면서 "아시안컵 당시 완패를 당한 것이 약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아시아의 강자가 된 지유진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다음달 28일부터 제주에서 벌어지는 전국체전에서 한국의 여자 조정 전체 1등이 되는 것이다. 지유진은 "전국체전에는 경량급이 없어 중량급에 출전하게 된다. 몸무게가 15㎏이나 차이가 나지만, 중량급 선수들을 모두 꺾고 대한민국 1등을 차지하고 싶다"고 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