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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김신욱(26·울산)은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 이후 홍명보호에서 모습을 감췄다. 너무 특징있는 선수이다보니 당시 조직력 만들기가 급선무였던 홍명보호에는 맞지 않는 퍼즐이었다. 여기에 김신욱도 문제였다. 헤딩만 잘하는 '반쪽짜리 선수'였다. 때문에 활용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신욱이 없는 사이 홍명보 A대표팀 감독(45)의 고민은 깊어졌다. 원톱과 골결정력 부재는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홍 감독의 마음 속 대안은 박주영(29·아스널)이었다. 홍 감독과 박주영은 2006년 독일월드컵,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 등 굵직한 메이저대회에서 사제로 한솥밥을 먹으면서 강한 믿음을 쌓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박주영의 입지가 불안해지면서 홍 감독도 결단을 내려야 상황이 됐다. 최근 홍 감독은 "(박주영이) 6월까지 벤치에 앉아 있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주영에 대한 미련을 버리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김신욱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조금씩 달성하고 있다. 새해 첫 축포의 주인공으로 홍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6일(한국시각) 코스타리카와의 친선경기에서 86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전반 10분 결승골을 폭발시켜 홍명보호의 1대0 신승을 이끌었다. A매치 두 경기 연속 골이다. 김신욱은 지난해 11월 19일 러시아와의 친선경기(1대2 패)에서도 선제골을 넣었다. 지난해 7월 홍명보호 출범 이후 A매치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린 선수는 김신욱과 이근호(상주)뿐이다. 순도는 김신욱이 앞선다. 이근호의 아이티전(2013년 9월) 득점은 페널티킥으로 만들어진 골이라 김신욱의 연속 골이 더 값지다.
드디어 '김신욱 활용법'이 완성된 느낌이다. 이날 김신욱은 홍 감독에게 세 가지를 주문받았다. 왕성한 활동량 공간 이용 압박 타이밍이었다. 많은 활동량은 활발한 포지션 스위치로 채웠다. 김민우(사간도스) 이근호 고요한(서울) 등 2선 공격수들과 함께 최전방을 비롯해 좌우 측면을 가리지 않고 포지션을 이동했다. 특히 조직적이고 전술적 움직임이 돋보였다. 4-2-3-1과 4-4-2 시스템의 혼재 속에서 원톱과 투톱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원톱 시 높은 제공권을 활용해 동료들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포스트 플레이를 펼쳤다. 코스타리카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투톱 시에는 상대 수비수를 끌고 중원으로 내려와 미드필더와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를 펼쳤다. 많이 뛰어야만 가능했던 모습들이다.
진가는 경기 초반 드러났다. 강한 집중력이 빛났다. 전반 10분 오른쪽 측면에서 이 용(울산)의 스루패스를 받은 고요한이 문전으로 찔러준 패스를 넘어지면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오른발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김신욱은 홍 감독의 모든 주문을 소화한 뒤 후반 41분 이승기(전북)와 교체됐다. 김신욱은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에 선정됐다.
김신욱이 박주영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있지만, 홍 감독은 여전히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있다. "득점 찬스를 잘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한 홍 감독은 "대표팀 원톱 향방에 대해서는 아직 해답이 나올 시기가 아니다. 그 위치에 있는 선수들은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현재 한국 대표팀에 완성된 것은 없다. 우리는 앞으로 더 좋은 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