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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여, 일어나라!' 슈마허, 죽음의 고비는 넘겼다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14-01-05 16:24 | 최종수정 2014-01-06 09:24


◇미하엘 슈마허

◇지난 2011년 10월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서 열린 F1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미하엘 슈마허(왼쪽)와 비탈리 페트로프의 머신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제공=F1 조직위원회

'영웅이여, 다시 일어나라!'

연말연시로 들떴던 지난달 30일(이하 한국시각), 전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레이싱의 황제'로 불리는 미하엘 슈마허(45)가 프랑스 남동부 메리벨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코스를 벗어나 바위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 것.

헬멧이 부서질 정도로 큰 사고였다. 만약 헬멧을 쓰지 않았더라면 즉사할 수도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뇌출혈로 인해 두차례 혈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아직 의식 불명인 상태이지만 일단 죽음의 고비는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 45번째 생일을 맞은 가운데, 많은 팬들은 슈마허가 치료를 받고 있는 프랑스 병원 밖에 모여들어 영웅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했다.

독일 출신인 슈마허는 F1을 모르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 정도로 현존하는 모터스포츠 최고의 스타라 할 수 있다. 지난 1991년 F1에 데뷔한 슈마허는 2006년까지 16년간 활동하다가 은퇴했다. 2010년 메르세데스팀으로 복귀해 2012년까지 3년간 더 활동한 후 완전 은퇴를 선언했다. 슈마허는 19년간 F1에서 뛰면서 역대 가장 많은 7번의 챔피언을 지냈으며, 72번의 그랑프리를 제패했다.

지난 1950년 시작돼 지난해까지 64주년을 맞은 F1에서 월드 챔피언을 지낸 드라이버는 32명에 불과하다. 슈마허가 7차례나 챔피언에 올랐고, 후안 마뉴엘 판지오(아르헨티나)가 5차례(1951년, 1954~1957년) 정상에 섰다. 슈마허의 후계자로 꼽히는 세브스찬 베텔(독일·2010~2013년), 'F1의 정석'으로 불리는 알랭 프로스트(프랑스·1985~1986년, 1989년, 1993년)가 각각 4차례로 뒤를 잇고 있다.

F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로 꼽히는 슈마허는 2004년 8000만달러(약 844억원)의 수입을 기록, 골프의 타이거 우즈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돈을 번 스포츠 스타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슈마허는 유네스코(UNESCO)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각종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지난 2004년 쓰나미 피해를 입은 동남아시아에 1000만달러를 내놓은 것을 포함해 그동안 무려 5000만달러(약 527억원)를 기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최대 시속 350㎞에 이르는 F1에서 19년을 뛰며 슈마허는 몇번의 사고를 경험했다. 지난 2011년 10월 전남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에서 열린 F1 코리아 그랑프리에선 비탈리 페트로프에게 두번째 코너에서 추돌을 당해 머신이 반파되며 리타이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F1 머신의 안전성 덕분에, 큰 부상을 당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슈마허이기에 모터스포츠 팬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F1에서 레이스 도중 숨진 드라이버는 6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상자는 F1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초창기에 집중됐다. 지난 1994년 아일톤 세나(브라질) 이후 지난해까지 레이스에서 사망한 드라이버는 단 한명도 없었다.


1988년과 1990년, 1991년 월드 챔피언에 오른 세나는 '서킷의 철학자'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아라 할 수 있다. 레이스에선 다혈질의 공격적인 드라이빙으로 유명했지만, 고국 브라질의 빈민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기부했고, 동료 드라이버들이 사고를 당하면 가장 먼저 머신을 세우고 달려갈 정도로 가슴 따뜻한 드라이버였다.

그해 5월 산마리노 그랑프리 결선에서 콘크리트벽을 들이받고 사망한 세나는 전날 예선에서 사망한 라트젠버거(오스트리아)를 추모하기 위해 가슴 속에 오스트리아 국기를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F1 팬들이 슈마허를 가장 뛰어난 드라이버로 꼽지만, 가장 위대한 선수는 세나라고 말할 정도도 그의 일생은 극적이었다. 세나가 사망한 이 경기에서 슈마허가 1위를 차지했고, 결국 1994년 월드 챔프를 차지하며 '레이싱 황제'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슈마허가 과연 언제쯤부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대한 영웅 세나를 잃으며 큰 충격에 빠졌던 모터스포츠 팬들은 또 한 명의 영웅이 하루빨리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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