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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퇴출' 아픔 속 차분했던 레슬링 대표선발전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3-02-19 17:03 | 최종수정 2013-02-20 08:40



19일 강원도 양구 양구문화체육관에서 열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파견 국가대표 1차 선발대회 및 시니어 주니어 선발대회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양구=하성룡 기자

19일 강원도 양구 양구문화체육관에서 막을 올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파견 레슬링 국가대표 1차 선발전. 2020년 하계올림픽 핵심종목 퇴출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이후 열린 첫 대회였다. 내로라 하는 레슬링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두 모였다. 퇴출을 막자는데 뜻을 모았다. 반면 선수들은 내색하지 않고 대회에만 집중했다. 양구문화체육관은 영하권의 추위 속에서도 뜨거웠다. 선발전을 위해 땀 흘리는 선수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경기를 준비하던 선수들은 매트 위를 구르며 기술을 최종 점검하는데 주력했다. 동료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함성도 가득했다.


100만명 퇴출 반대 서명을 한 최성열 대한레슬링협회장. 양구=하성룡 기자
100만명 퇴출 반대 서명운동

대한레슬링협회는 이날 양구문화체육관에서 퇴출 소식 이후 첫 이사회를 열었다. 이견이 없었다. 위기에 빠진 레슬링을 구하기 위해 협회가 한데 뜻을 모아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맞서 싸우는데 힘을 보태기로 했다.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직접 발로 뛰기로 했다. 100만명 퇴출 반대 서명운동으로 여론을 모으기로 했다. 최성열 대한레슬링협회장의 서명을 시작으로 퇴출반대 서명운동이 본격 시작됐다. 협회 임원들과 심권호 안한봉 박장순 등 한국 레슬링의 대들보들도 대거 서명에 동참했다. 시니어 선수들은 물론 주니어 선수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서명 용지에 이름을 적었다. 최 회장은 "협회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각 시·도에서도 레슬링 가족들이 동참하기로 했다. 100만명의 서명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대올림픽부터 이어져온 역사가 깊은 종목이다. 레슬링인들의 목을 걸고 퇴출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국민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 레슬링 올림픽메달리스트도 광화문에 모여 목소리를 높이기로 했다. 김학열 협회 사무국장은 "모든 국민이 힘을 보태줘야 한다. 광화문에서 퇴출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열 계획이다. 메달리스트들이 시범 경기를 해 국민들에게 레슬링이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고 했다. 박종길 태릉선수촌장도 대회장을 찾아 협회에 힘을 실어줬다.

레슬링 퇴출 반대 운동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레슬링 강국인 러시아 미국, 일본이 퇴출 반대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며 IOC를 압박하고 있다. 김 국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레슬링 퇴출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부 정치인들이 '레슬링의 퇴출이 확정되면 일본의 올림픽 전종목 보이콧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레슬링 선수 출신인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IOC에 재검토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데 이어 미국 언론을 통해 레슬링 퇴출 반대를 외치고 있다.

대한레슬링협회도 정부와 공조를 모색하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나서 퇴출에 대해 의논했다. 정부에서도 레슬링의 퇴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같이 고민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불안과 열정이 공존하다

레슬링 퇴출에 대한 체감온도는 각양각색이었다. 불안과 열정이 공존했다. 오전에 열린 대표 선발전에서는 긴장감이 넘쳤고, 오후에 벌어진 아시아 시니어·주니어 레슬링선수권대회 파견 선발대회에서는 열정이 느껴졌다.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레슬링은 재미없다'는 비난을 잠재우려는 듯 안아던지기 등 큰 기술로 상대를 제압했다. 주니어 그레코로만형 74㎏급에 출전한 박대건(20·용인대)은 "재미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조금 더 집중해서 본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지도자나 선수 모두 마찬가지였다. 김덕호 북평고 감독은 "레슬링인으로 퇴출 소식을 듣고 비참했다. 망치로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면서 "선수들 부모님이 전화해 '계속 운동을 시켜야 하나'라고 물어보신다. 이럴때일수록 더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걱정이 많은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1990년 탈북해 형인 김국현(한국체대 1학년)과 함께 레슬링을 시작한 그레코로만형 50㎏급의 김주현(17·북평고)은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뉴스를 보시고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이게 무슨일이냐, 모든 레슬링 선수들의 꿈이 올림픽 금메달인데 퇴출되면 레슬링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하셨다. 나는 '열심히 하겠다'고만 말했다." 협회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김 국장은 "최근 중학교 1개 팀이 창단을 준비하다 포기했다. 협회로 선수들 부모님 전화가 하루에 300통 가까이 온다. 다들 불안해 하고 있다"고 했다.

'재미없다'는 비판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심판으로 두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던 진형균 국제 심판 겸 조폐공사 감독은 "비판이 있다면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경기를 보면 딱 누가 이겼다는 것을 알수있게 규정에 변화를 줘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레슬링도 살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양구=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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