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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교육현장엔 반드시 유능하고 열정적인 교사가 있다. 한 사람의 교사가 학교체육 현장을 바꾼다. 진심은 통한다. 선생님의 건강한 정신은 스마트한 학생들에게 스펀지처럼 흡수된다. 학교체육 현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얻은 결론이다.
이 교사는 교직생활 20년에 5개교 여학생들이 스포츠 활동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작지만 의미있는 사건이다. 선수가 아닌 보통 여학생들이 토요일 아침 도서관에서 트레이닝복을 갈아입고 이웃학교를 찾았다. 5개교 중 4개교 인솔교사가 열정적인 여성 체육선생님이었다.
이날 가락고 체육관의 주인은 철저히 여학생들이었다. 오전 9시부터 2시간 반동안 토너먼트 형식으로 농구, 줄다리기 대결을 펼쳤다. 가락고 남학생들이 스코어보드를 넘기며 '도우미'를 자청했다. 놀라운 것은 여학생들의 투지와 열정이었다. '여학생들은 운동을 싫어한다' '여자농구는 선수들만 한다'는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선수가 아닌 보통 여학생들이 거침없이 농구공을 드리블하며 자신있게 레이업슛을 쏘아올렸다. 밀착마크를 위해 코트에 몸을 던졌다. 코트를 신명나게 휘저었다. 몸사리지 않는 플레이, 불꽃튀는 승부욕이 한겨울 코트를 뜨겁게 달궜다. 예기치 못한 서로의 에너지에 서로가 놀랐다. 김진효 강동교육지원청 장학사가 아이스크림과 컵라면 선물을 들고 현장을 찾았다. 기대 이상의 열기에 놀라움과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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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사는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출신으로 송파구 여성축구단 주전 미드필더다. 14년차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지금도 필드를 누빈다. 세 딸의 엄마이자 국가대표 구자철 서정진의 스승인 문선철 보인고 총감독의 아내이기도 하다. 이날 농구선수가 부족한 이웃학교를 위해 '와일드카드' 선수로 출전을 자청했다. 전광석화같은 몸놀림과 스피드로 탄성을 자아냈다. 유능한 여교사의 솔선수범은 여학생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팔방미인' 이 교사는 가락고 여학생들의 멘토이자 롤모델이다. "선생님처럼 건강하고 씩씩한 엄마가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다.
이 교사는 '맘 스포츠'를 주창하고 있다. 제자들을 '운동하는 건강한 엄마'로 키워내는 것이 꿈이다. "운동해봐, 공부할 에너지가 생길 거야"는 말은 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진리다. "운동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은 건강하다. 이들이 나중에 엄마가 되면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운동을 권하게 돼있다. 운동의 가치를 아는 엄마는 무조건 공부만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건강한 '여성'이 대물림된다.
이 교사가 공들인 가락고 여자축구클럽 '발모아'는 모범사례다.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우승 등 눈부신 '스펙'은 수많은 기적의 일부일 뿐이다. 소심하고 평범한 여학생들이 축구를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발모아' 학생들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건강하고 건전하다. 공부 잘하고 성격 좋은 '알파걸'로 성장했다. 여학생 학교 스포츠클럽의 우수사례로 손꼽힌다.
이날 농구경기에서 발군의 기량으로 우승을 이끈 '발모아' 장유정양(17)은 "처음으로 이웃학교 친구들과 함께 뛰면서 정말 즐거웠다. 함께 땀흘리며 친구가 됐다"고 했다. "고3이 되어도 운동은 계속할 것"이라며 웃었다. "운동을 하면 체력이 강해진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공부 능률도 더 잘 오른다. 문학성적도 1등급으로 올랐다"고 덧붙였다. 창의경영학교 학생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발모아 수비수 홍예지양(17)은 이렇게 썼다. "지금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이정미 선생님처럼 나도 훗날 축구하는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 여학생들의 체육활동이 소중한 이유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 동영상=http://www.youtube.com/watch?v=oS0hDnZuf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