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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육상]'볼트에 이어 류시앙마저' 대구는 스타들의 무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1-08-29 22:03


최강자는 로블레스였다. 29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 대구세계육상대회 남자 110m 허들 결승 경기에서 3위로 골인한 류시앙(중국)이 아쉬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연이틀 이어진 충격파였다. 류시앙(29·중국)을 응원하기 위해 온 중국팬들은 망연자실해했다. 대규모로 파견됐던 중국 기자들마저 할말을 잃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3만여 대구시민들까지도 아쉬워했다.

전날 남자 100m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가 부정출발로 인한 실격패 당한 것에 이은 대형 쓰나미였다. 이번에는 '13억의 희망' 류시앙이었다. 류시앙은 29일 남자 110m허들에서 불운에 울었다. 대역전극은 펼치는 듯 했으나 마지막 허들에서 걸리며 3위에 머물렀다. 볼트의 이어 류시앙까지 우승하지 못하면서 대구는 '스타들의 무덤'이 되었다.

13억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육상의 자랑이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7년 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로 흑인과 백인에 맞서 아시아인들도 단거리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희망의 증거였다. 2008년 불의의 부상 이후 다시 황제 등극을 노리던 그가 무너졌다.

류시앙의 부활 프로젝트는 사람과 시간, 전략이 모두 어우러진 야심찬 계획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예선에서 오른쪽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중도 포기했다. 13억 중국인들은 망연자실해했다. 하지만 바로 힘을 모았다. 시진핑 중국 부주석은 류시앙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중국 부주석이 스포츠스타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NBA스타 야오밍도 나섰다. 2007년 발등 피로골절을 당했을 때 자신을 말끔하게 치료해준 명의 톰 클랜턴을 소개시켜주었다. 류시앙은 클랜턴의 집도 아래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충분한 시간도 보장받았다. 류시앙 부활 프로젝트는 2년에 걸쳐 진행됐다. 2009년과 2010년 수술 부위가 도지자 정밀검사도 받았다. 사람들은 기다렸다. 류시앙이 다시 날개를 펼칠 것이라고 믿었다. 빨리 나오라고 압박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치료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전략도 충분했다. 2009년 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전략적으로 포기했다. 완벽한 몸상태가 되기 전에는 뛰지 않았다. 목표는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은 워밍업이었다.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감을 장착했다. 2011년 대구에서 우승으로 본격시동을 걸 참이었다. 하지만 대구의 파란 몬도 트랙이 발목을 잡았다.

의미는 있다. 마지막 허들에 걸리기전까지 류시앙은 전성기의 몸상태를 보여주었다. 중반 이후 폭발적인 스피드로 선두를 달리던 로블레스를 따라잡았었다. 그대로 간다면 우승이었다. 이번 대회 불운은 런던 금메달을 준비하는 류시앙에게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 됐다.

우승자 데이런 로블레스(25·쿠바)는 지긋지긋했던 '류시앙 징크스'를 털어냈다. 류시앙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2007년 오사카대회에서 4위에 그쳤다. 2008년 3월 스페인 발렌시아 실내세계육상선수권대회 예선에서는 같은 조에 있던 류시앙이 부정출발했다고 착각해 멈칫했다. 예선에서 탈락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지만 류시앙은 병원에 있었다. 2009년 부상으로 베를린대회를 포기한 로블레스는 이번 대회에 모든 것을 걸었다. 류시앙 앞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비록 마지막 10번째 도움이 있기는 했지만 금메달은 그의 품에 안겼다. 2위는 미국의 신예 제이슨 리차드슨(25)이 차지했다.
대구=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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