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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 하나둘, 좀 더 페이스를 끌어올려. 그렇게 해서 대구 더위를 이겨내겠나."
이민호 경보대표팀 코치의 목소리를 쩌렁쩌렁했다. 이 코치의 옆을 선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갔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한달여 남겨놓은 7월 중순 강원도 고성 화진포 옆 2차선 도로에서 한국 경보대표팀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이를 악무는 이유가 있었다. 20㎞의 에이스 김현섭(26·삼성전자)은 가족을 위해 걷고 또 걸을 생각이다. 동갑내기 아내 신소현씨와 다섯살배기 아들 민재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때 처음 만났고 2005년부터 사귀었다. 2006년 사랑의 결실인 민재를 얻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각종 대회 참가와 합숙 훈련으로 시간을 내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인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 결혼식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베이징에서는 23위, 광저우에서는 동메달에 그쳤다. 광저우에서 목표는 우승이었다. 이번만큼은 꼭 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다. 이번 대회가 끝난 뒤인 11월 26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김현섭은 "아들 민재가 멘날 금메달을 따오라고 한다. 이번 대회 메달을 따면 결혼식에서 그 메달을 아들 목에 걸고 함께 입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 해볼만하다. 1시간19분31초의 한국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3월 일본에서 세웠다. 올 시즌 세계랭킹으로 따지면 7위에 해당한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김현섭이 현재의 몸상태로만 걸어준다면 10위 내 진입은 물론이고 메달 획득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김현섭 본인도 "대구는 상당히 덥다. 유럽 선수들은 대개 아시아에서 맥을 못춘다. 1시간 21분에서 22분대를 세운다면 충분히 순위 싸움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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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많았던 자신의 경보 인생에서 획기적인 점을 찍을 기회다. 전남 영암 출신인 박칠성은 중장거리를 뛰다가 고2때 경보로 전향했다. 중장거리에서는 도저히 비젼이 보이지 않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경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2개월만에 나선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체질에 딱 맞았다. 대학을 나온 뒤 실업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매년 2등만 차지했다. 지긋지긋해졌다.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때마다 이 코치등 지도자들이 나서 박칠성의 마음을 돌렸다. 위기가 있었다. 2009년 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대에 지원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렸다. 일반군으로 가야할 상황이었다. 당시 상무는 경보 선수를 뽑지 않았다. 일반군에 가게 되면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끝에 상무에서 재가가 떨어졌다. 일반군 입대 3일전 상무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 11월이면 전역이다. 새롭게 기회를 얻은만큼 이번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노리고 있다. 자신의 20㎞ 최고기록 1시간20분17초를 기록한다면 충분히 입상도 가능하다. 특히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선두 경쟁을 펼치다가 석연치 않는 판정으로 실격당한 아쉬움을 설욕하고자 한다.
팀 내 큰 형 김동영(31·삼성전자)은 50㎞에 나선다. 김동영은 국내에서 최초로 50㎞에 나선다. 선구자다. 일반 중학생이었던 김동영은 운동이 좋아 체고에 진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해 광저우에서 3시간52분52초의 자신의 최고기록을 세웠다. 이번 대회와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노리고 있다.
이들 외에도 변영준(27·대구광역시청) 임정현(24) 오세환(23·이상 삼성전자) 등도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변영준은 "열심히 해서 박태환이나 김연아 같은 성적을 내고 싶다. 지금은 비인기종목이지만 좋은 성적을 내면 사람들의 눈도 달라질 것이다"고 기대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