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최재성의 축구산책] 조진호가 조기 은퇴한 사연
2004-06-15 19:09
◇ 부천 SK 코치로 변신한 조진호
▶쓰레기 만두와 기자의 판단
 쓰레기 만두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디 만두 뿐이랴. 그동안 귀한 먹거리 가지고 장난친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썩은 고춧가루로 김치를 담가 먹었고, 인체에 해로운 약품으로 색깔을 낸 단무지를 자장면에 얹어 먹었으며, 썩어서 진이 줄줄 흐르는 중국산 올갱이로 해장국을 끓여먹기도 했다. 중국산 영광굴비나 고사리, 물먹인 소 따위는 양반이다.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쓰랬더니 말 뜻도 못 알아듣고 정말 개가 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이런 '먹거리 장난' 사건이 사흘이 멀다하고 터져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입에서 "법이 물러터져 그렇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한데 쓰레기 만두의 유통 사실이 이미 오래전에 드러났으나 수사를 앞세운 경찰의 보도자제 요청 때문에 안 먹어도 될 쓰레기를 더 먹어야 했다는 소식이 국민들을 또 한 번 끓게 했다. 소비자 목숨을 담보로 돈벌이를 한 악질적인 범인을 잡는 일도 중요하고, 국민들의 건강 또한 중요하기에 이 사안은 갑론을박을 불러왔다. 경찰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범인 검거에 협조한 어떤 기자는 지면에다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경찰도 고민이었을 테고, 그 고민을 수용하기까지 언론도 고민이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지고 말았다.

◇ 94년 미국월드컵 독일과의 예선 3차전을 앞두고 동료들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조진호(왼쪽에서 다섯 번째)

▶홍명보가 알려준 빠삐용 조진호
 전혀 다른 유형의 얘기지만 기자 또한 보도 여부를 놓고 골이 터져라 고민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 중에서도 95년 2월에 터진 '조진호 태극마크 자진 반납 사태'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대표팀이 동북아 4강이 겨루는 제3회 홍콩 다이너스티컵에 참가했을 때였다. 당시 주장 조진호를 비롯해 최용수 윤정환 우성용 이기형 박충균 이운재 등이 주축을 이뤘고, 홍명보 유상철 등이 와일드카드로 힘을 보태고 있었다. 마침 일본이 A대표팀을 내보낸 터라 색다른 한-일전에 국내 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홍콩에 입성한 한국팀이 훈련을 시작한 지 사흘째인가 되는 날이었다. 훈련을 앞두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던 홍명보가 입가에 묘한 웃음을 흘리며 기자에게 다가와서는 느닷없이 한마디 했다. "형, 진호 좀 봐요. 다 죽어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닌 게 아니라 진호 안색이 좀 안 좋긴 하더라만 무슨 일이라도 있냐?" "에이~, 나한테 묻지 말고 형이 직접 물어보세요. 여하튼 보통 일이 아니예요." 순간 느낌이 이상해 몸을 풀고 있는 조진호를 유심히 살폈다. 얼굴은 반쪽이었고, 표정도 몹시 어두웠다. 게다가 온몸이 물먹은 솜이불 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밝고 활달한 데다 붙임성도 좋아 누구하고도 잘 지내는 그였기에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중요한 경기를 앞둔 상황이었고, 그는 주장 완장까지 찬 리더였기에 더욱 그랬다.

▶조진호의 애절한 부탁
 훈련이 끝난 뒤 조진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진호야, 무슨 일 있냐? 힘이 없어 보이네." 그랬더니 그의 입에선 뜻밖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죽겠심다, 행님. 나 좀 살려주이소." 키큰 선수를 선호하는 비쇼베츠 감독이 조진호를 베스트11에서 제외한 데 이어 교체멤버로도 잘 쓰지 않아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었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정작 조진호를 주저앉힌 일은 따로 있었다.
 우선은 주장 완장이 그의 숨통을 조였다. 꼭 그래야 하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한국 축구판에서는 주장이 후보로 따라다니는 예가 거의 없다. 주장은 대부분 나이나 학년이 높은 선배가 맡는 게 관례인 데다 주장의 후보 전락은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한데 선후배 관계가 각별한 한국의 축구문화를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한 비쇼베츠 감독은 베스트11으로 쓰지 않을 선수를 주장으로 뽑아 본의 아니게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이다. 그것도 명색이 대표팀에서. 한국땅을 밟자 마자 "국민성부터 파악하겠다"며 나름대로 한국문화 이해에 의욕을 보였던 비쇼베츠 감독도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조진호의 숨통을 죈 또 하나의 사슬은 나이였다. 당시 올림픽 출전 자격은 73년 이후 출생자로 제한돼 있었는데 조진호나 최용수 등 몇몇은 호적(73년생)보다 실제 나이가 많았다. 삐딱하게 보자면 조진호는 '주장 완장만 차고 있는 능력없는 선배'가 돼 있었던 셈이다. 원래 그저 그런 선수였다면 죽겠다는 소리까지는 안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스타 중의 스타로 명성을 날렸고, 출중한 기량으로 공격라인을 이끌던 그였으니 그 같은 환경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어린 나이에 94년 미국월드컵 대표로 뽑혀 독일전(2대3 패)에서 벼락같은 오른발 대각선포로 시선을 집중시켰던 멋진 기억과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그라운드 한 번 밟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이 또 그를 벼랑끝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그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의 요구 조건은 간단했다. "행님, 저 대표팀에서 좀 빼주이소. 이래 있다가는 말라죽을 것 같심다." 세상에 남들은 태극마크 한 번 달아보는 게 평생의 소원인데 대표팀에서 빼달라니 이건 또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란 말인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간절했다. 감독과 대화를 하라고 권해 보고, 협회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제안도 해봤지만 그에게는 이미 그 어떤 자구책을 강구할 희망이나 의욕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협회 관계자나 코칭스태프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한마디로 '조진호, 태극마크 자진 반납'이라는 내용의 기사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자의 판단과 업보
 물론 한국축구 100년사를 통해 대표팀 주장이 태극마크를 반납한 예는 없었기에 기자의 입장에선 군침이 도는 특종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선수 본인이 사정을 하며 입안에 넣어주는 특종이니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한 선수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특종 따위로 가늠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그를 단념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보면 길이 열릴 거라며 달랬고, 분명 후회하게 될 거라며 타이르기도 했다. 자칫 선수자격이 영원히 박탈될 수도 있을 거라며 겁도 줬고, 그런 기사는 쓰지 않겠다고 발뺌도 해봤다. 하지만 이미 모든 걸 단념해버린 그의 마음을 돌려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와 절친했던 기자에게 모든 짐이 지워지고 말았다. 쓰자니 대회를 앞둔 대표팀에 파문이 일 게 뻔하고, 안 쓰자니 유망한 선수 하나가 아주 망가져버릴 것 같고. 정말 사면초가가 따로 없었다.
 거듭 애절하게 당부하는 조진호를 뒤로 한 채 호텔로 돌아와서는 밤새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기사를 쓰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조진호는 베스트11에 포함돼 있지 않았으니 경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며, 설령 그가 남더라도 결코 대표팀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자칫 때를 놓치면 조진호를 지옥의 슬럼프에서 영원히 건져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알게 모르게 보도를 종용했다.
 다음날 국내에 홍콩발 '조진호, 태극마크 자진 반납' 기사가 터졌고, 대한축구협회와 홍콩의 대표팀 코칭스태프 진영에 난리가 났다. 조진호의 목적이 달성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조진호의 입장과 변화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동료들은 별다른 동요없이 경기에 임해 예선에서 일본 A대표팀과 1대1로 비기는 낭보를 띄웠고, 대한축구협회 역시 조진호의 징계 방침을 철회하면서 사태는 원만히 매듭지어졌다.
 결론적으로 기자의 판단이 50점은 넘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다. 그렇게 펄펄 날던 조진호가 그 일을 겪고난 이후 플레이가 시들해지면서 팬들의 시야에서 조금씩 멀어지더니 급기야 이 팀 저 팀 옮겨다니는 떠돌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나중엔 무릎 부상까지 겹쳐 힘겨워 하더니 명예회복도 못하고 끝내 은퇴를 하고 말았다. 기자는 9년이 넘도록 그 때의 일을 잊은 적이 없다. 조진호의 시즌 성적이 나쁘거나 이적한다는 얘기가 들릴 때마다 행여 그 기사 때문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더없이 괴로웠고, 두고두고 가슴이 쓰렸다.
 쓰레기 만두를 둘러싼 지연 보도의 정당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인 요즘, 기자는 '조진호 태극마크 자진 반납' 기사의 보도가 과연 옳았나 하는 혼자만의 수수께끼를 놓고 또 다시 고민에 빠져 있다. 아마도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인 모양이다. 여하튼 부천 SK의 코치로 변신한 조진호가 못다 피운 재주를 지도자로서나마 활짝 꽃피웠으면 참 좋겠다. < kka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