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애인하자는 50대사장 무서워도 못떠나는 20대 이주노동자
기사입력 2023-03-21 08:05
|
|
|
|
|
|
|
|
|
|
|
|
|
|
"직장 이동 막는 나라가 북한 말고 어디에 있는가"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장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김달성(68) 목사는 경기도 포천 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주말에도 상담 요청이 들어오고, 밤에도 전화가 온다. 거의 하루 24시간, 연간 365일 대기상태다.
그는 '가장 낮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주 노동자를 돕는 데 힘을 쏟는다.
지난 16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야를 떠나 한국의 입법부, 정부, 사법부가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임금 체불을 당해도, 임금 없는 주말 근무를 해도, 성폭력을 당해도 사업장을 옮길 수 없고 고용주한테 이의제기도 할 수 없는 노예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양대 우파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이런 착취 구조를 심화시켰다고 했다. 5천만명의 우리 국민도 직간접적으로 이런 착취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청주고를 졸업한 김 목사는 충남대 의대를 다니다 감리교신학대에 편입해 졸업한 뒤 서울 사당동, 봉천동, 인천 주안공단 지역 등에서 빈민, 노동자들을 위한 목회 활동을 했다. 5년 전부터는 포천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면서 이주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 고향은 어디인가.
▲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청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청주 시내를 관통하는 무심천에서 멱감으면서 놀곤 했다.
--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 일제 강점기 시대에 청주상고를 졸업한 아버지는 진천군청에서 일하시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교육 행정공무원으로 전환해 학교 행정실에 근무하셨다. 아버지는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당신의 어머니를 잃어서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
▲ 활달하고 통이 크셨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는데, 이게 한이 됐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이 매우 강했다. 머리채를 잘라 팔아서라도 자식 교육을 할 분이었다. 다행히 우리 형제들이 공부를 잘한 편이었다.
-- 어머니한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나.
▲ 교육열이 강했지만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나보다 10살이 많은 큰 형이 훈육을 맡았다. 나와 둘째 형은 망아지처럼 뛰어노는 스타일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야구와 축구를 했다. 방학이면 외가에 가서 개학할 때까지 내내 놀았다. 큰형은 이런 우리를 훈육한다면서 자로 때리곤 했다. 큰형은 학교에서 오면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형한테 매를 맞으면서 권위에 반항하고 도전하는 성향을 갖게 됐다.
-- 중고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 청주중학교에 간신히 합격했다. 당시는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입학시험을 봐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입시 공부에 집중했다. 충북 도지사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도종환이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다. 청주고도 같이 다녔던 김영환은 내성적인 스타일이었지만 눈빛에는 야망이 있었다. 도종환은 말수가 적고 얌전했다. 그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미대를 안 가고 국문과를 선택했다.
-- 본인은 의대에 들어갔다가 중퇴했는데 그 이유는.
▲ 청주중에 이어 청주고를 졸업하고 경영학과, 정치학과, 사회학과 중 한 곳에 진학하려 했다. 그러나 연대 의대를 다니던 둘째 형이 의대를 강력히 권해서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충남대 의대에 진학했다. 문과생이 의대생이 됐으니 재미가 없고 적성에 맞지 않았다. 매일 실험실에서 토끼를 잡고, 뼈 수십 개의 이름을 외우는 방식의 수업이 반복됐다. 유일하게 재미있는 수업은 철학 개론이었다.
-- 감리신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 충남대 의대 예과 1학년 2학기 때 친구에 이끌려 처음으로 교회에 갔고, 성경 공부를 하게 됐다. 위대한 인물 예수를 만나보니 의사라는 직업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게다가 당시 나는 급성폐렴이 결핵성 가슴막염(늑막염)으로 번져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다. 폐를 둘러싼 막이 이중으로 돼 있는데, 그 이중 막 사이에 염증이 굳어버려 폐가 신축성 있는 운동을 못 하게 됐다. 오른쪽 폐 기능의 75%가 상실된 것이다. 이런 몸으로는 의사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나는 의대를 그만두고 감리신대 2학년에 편입하게 됐다.
-- 감리신대에 다니면서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나.
▲ 고향인 청주에 볼일이 있어서 간 적이 있었다. 마침 주일이어서 어느 교회를 갈까 찾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정진동 목사(작고)가 있는 노동자교회에 가게 됐다. 그곳은 일반 교회와 달랐다. 예배를 드리는 정 목사는 점퍼 차림이었고, 십자가는 야산의 참나무를 베어서 만든 것이었다. 교인들은 산재 당한 사람들, 부당해고 당한 사람들, 체불임금 때문에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 토지를 수용당해 억울하다고 하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농민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봤다.
-- 서울에서 감리신대를 다니면서 청주에 자주 내려갔나.
▲ 주말마다 청주의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때가 10·26사태 발생 바로 전해인 1978년이었다. 그곳에서 도시빈민이 단식하면서 투쟁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예수의 사회적 사명을 인식했다. 정진동 목사님은 나의 멘토가 됐다.
--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구로공단에 취업한 이유는.
▲1979년 2월에 감리신대를 졸업하기 직전 겨울에 구로공단에 들어갔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하나님에게 한 것이다'라는 마태복음 25장 40절을 붙들고 갔다. 평생 노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를 섬기는 목회를 하려면 적어도 직접 노동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종학력으로 고교 졸업장을 떼어서 제출했으니 위장취업이었다. 내가 취업한 곳은 구로공단 내 광학 회사였다. 근로자 3천 명이 주야로 교대하면서 안경테와 군용 망원경을 만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각혈했다. 결핵성 가슴막염이 폐결핵으로 번진 것이다. 나는 치료를 위해 고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구로공단에 들어온 지 3개월 만이다.
-- 사당동에서 빈민운동은 어떻게 하게 됐나.
▲ 고향인 청주에서 병을 치료하던 중 강원도 문막의 교회 목사로 갔다가 사당동 판자촌 지역의 희망교회에서 목사로 일하게 됐다. 감리교단 본부 선교국이 빈민을 위해 세운 교회였는데, 담임목사 자리가 비어서 가게 됐다. 1979년 11월이었다. 교회도, 목사 사택도 판자촌에 있었다.
-- 사당동 희망교회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린이집을 운영했고, 자원봉사 의사들을 초청해 주말 진료도 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한 뒤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야학도 열었다. 이 야학에는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학생들이 교사로 참여했다. 검정고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소양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었다. 일방적 주입이 아닌 토론식으로 진행했다. 무엇보다 큰 것은 주민들이 저축해서 그 지역의 땅을 매입한 뒤 연립주택을 짓자는 조합 운동이었다. 그 조합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 조합 운동이 실패한 원인은.
▲ 전두환 정권이 1982년 사당동 판자촌을 철거했다. 그때 300여 명의 전투경찰이 동원됐다. 우리는 저항했으나 이길 수 없었다. 주민이 구속되고 판자촌은 완전히 철거되고 말았다. 나는 봉천동 산동네로 옮겨서 빈민운동을 이어갔다.
-- 봉천동에서 계속 목회 활동을 했나.
▲1985년에 인천의 주안공단 지역 교회로 옮기게 됐다. 빈민 선교보다는 노동자 선교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안공단 지역에서 나는 기복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노동자교회를 지향했다. 당시에는 민중교회라고 불렀다. 나는 다른 교단의 노동자교회, 빈민교회와 연대하는 민중교회 연합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때 전국에 있는 100여 개 교회가 참여했다. 인천지역 목사님들과 단체를 만들어 인권운동에도 나섰다. 그때 부천 성고문 사건을 변호사로부터 처음 전해 듣고 이를 사회에 알리는 일도 했다.
-- 빈민교회, 노동자교회 운동을 하면서 건강에 문제가 없었나.
▲ 결핵성 가슴막염이 악화했다. 사당동, 봉천동에서 빈민운동을 하면서 영양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가슴막염이 농흉으로 악화했다. 피고름 주머니가 생겼고 그곳에서 나오는 피고름을 계속 입으로 뱉어내야 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갔더니 갈비뼈 세 개를 잘라 내고 호스를 박아서 피고름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옆구리에 기저귀 같은 패드를 부착하고, 하루에 5∼6차례씩 갈아야 했다.
-- 그 병은 아직도 치료되지 않았나.
▲ 그렇게 5년을 살았다. 어느 날 학생들이 돌아간 뒤에 오후 10시쯤 판자촌 사택에 누워서 얼핏 잠들었는데, 옆구리에서 나무젓가락 크기의 흉한 벌레가 나와서 하늘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이후 피고름의 농도가 낮아지고 양이 줄어들더니 6개월 만에 완전히 멈췄다. 나는 5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탕을 갈 수 있었다. 그 이후 이 병으로 병원에 간 적은 없다. 나는 하나님의 터치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 인천에서는 계속 노동자 목회를 했나.
▲ 국내외 환경이 바뀌었다. 국내에서는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했다. 국제적으로는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졌다. 이제는 교회가 고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변혁을 위한 선교활동을 해왔던 나는 마음의 변혁에 집중하는 목회 활동을 하기로 했다. 1990년에 부평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일반 교회로 옮겼다.
-- 마음의 변혁에 성공했나.
▲ 열심히 했다. 그 결과 1997년에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나와 150평 정도의 교회를 새로 지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마음의 변혁은커녕 자신도 모르게 교회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더 많이 신경 쓰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교했다. 그들이 은연중에 교회의 중심이 됐다.
-- 그런 교회가 어려움에 빠진 이유는.
▲ 외환위기를 만나 금리가 올라가면서 교회 지을 때 생긴 부채의 이자가 2배, 3배로 불어났다. 게다가 아내가 40세에 난치병에 걸렸다. 몸이 점차 굳어가는 파킨슨병이었다. 매일 생명이 스러져가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내는 7년의 투병 끝에 2004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교회는 더욱 쇠락하고 빚은 갈수록 불어나 부도날 지경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가 떠난 이후 나한테는 공황장애와 폐소공포증까지 왔다. 세면장에서 칫솔질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차 안에 들어가도 안절부절못했다. 안방, 서재, 건넌방, 집 밖으로 불안하게 왔다 갔다 했다. 결국 나는 목회 활동을 중단했다.
-- 포천에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은 어떻게 하게 됐나.
▲ 나는 기도 속에서 나의 불안 원인이 아내와의 사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옆구리로 피고름을 받아내는 것을 알고도 아내는 나와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를 많이 의지했던 것인데. 아내가 세상을 떠나니 무의식 속에서 불안이 나를 좌지우지한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 후에 마음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2011년에는 포천에서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목회 활동을 재개했다. 포천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았다. 주말에 시내에 가면 동남아에 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그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과거에 극히 작은 자들을 섬기겠다고 했던 초심이 자극됐다. 그래서 2018년부터 이주노동자들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 고용허가제에 따라서 오는 사람들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등 16개 저개발 국가에서 온다. 한국에 취업하려면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보통 경쟁률이 5대1, 6대1 정도 된다. 현재 한국에 130만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이 중 40만명은 미등록(불법) 노동자들이다. 고용주 허가 없이 사업장을 떠난 사람들, 고용 기간이 만기가 됐는데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 등이다.
--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돈을 버나.
▲ 농축산업의 경우 160만∼200만 원이다. 제조업은 더 받는다. 이 월급은 자국에서 받는 것의 6∼7배 된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강도가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자국의 3∼4배 정도로 봐야 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5년, 10년 정도 일한 뒤 되돌아가서 작은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점을 열든가, 택시를 하나 사서 운행하거나, 양어장을 하기도 한다.
--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여건은 어떤가.
▲ 농장에서는 대체로 한 달에 두 번 쉰다.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휴무하는데. 월요일 출하를 위해 전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일하는 시간은 10∼12시간이고, 쉬는 시간은 점심때 45분∼1시간 정도다. 일정 기간 밤에만 계속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 하루 8시간 근무, 1주당 하루 휴무 등을 약속받고 한국에 오는 것이 아닌가.
▲ 물론 그렇게 계약이 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채소농장의 경우 하루라도 출하하지 않으면 시들해져서 상품성이 떨어지니 농장주들은 휴일 없이 일을 시킨다.
-- 밤에 일하면 급여를 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 휴일 근무, 밤 근무 등에는 150%의 임금을 주는 게 상식이지만 농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말에 일해도 아예 근무하지 않은 것처럼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최저 임금 적용도 안 한다.
-- 고용주들이 임금을 떼어먹는 것인가.
▲ 최저 임금, 휴일수당, 야근수당, 근로 시간 등을 고려하면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이 한 달에 400만 원은 받아야 한다. 노동 착취율은 50% 정도 된다.
-- 한국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뭔가.
▲ 욕은 개새끼. 씨발놈아, 병신새끼, 등신새끼 등이다. 사업주들은 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산 것인데, 사람 자체를 샀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말하는 동물 정도로 보는 것이다. 사업주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온 사람, 피부색이 거무스레한 사람을 낮게 보는 측면이 있다. 고용노동부나 산재 지정 병원 직원들도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반말한다
-- 한국 고용주들이 성폭력도 하나.
▲ 설문조사를 하면 성폭력 사례가 10∼20% 정도이고, 40%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형은 성희롱부터 시작해서 성추행, 강간까지 있다. 작년에 상담한 사례인데, 20대 필리핀 여성 노동자가 50대 남자 사장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장이 애인이 돼 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했다. 거절을 했는데도 2∼3개월 똑같은 말을 하니 이 노동자는 사장한테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다. 다른 농장으로 옮기겠다는 것인데, 사장은 이를 거절했다. 이후에도 사장의 이런 행태가 지속하자 이 노동자는 사장이 하는 말을 녹음해놨다가 제시했다. 이 노동자는 간신히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 샤워실을 훔쳐보는 사례도 있다고 하던데.
▲ 한 공장건물 2층 기숙사 옆에 샤워실이 있었다. 하루는 한 여성 이주노동자가 일을 마치고 샤워하는데, 샤워실 내 거울 건너편에서 플래시가 터지는 것을 봤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조사한 결과, 그 거울은 반대편의 사장실에서 샤워실을 볼 수 있는 특수 거울이었다. 사장이 샤워실 안을 들여다보고, 사진 촬영까지 한 것이다.
--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는 경우가 많나.
▲ 원시적 산재들이 많다.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가장 잦고, 다리가 부러지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화상과 질식사고도 있다. 손가락은 프레스에 의해 절단되는 경우가 많다. 잘린 손가락을 모으면 1년에 12가마니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 공장에 안전장치는 없나.
▲ 손가락이 꼈을 때 공장 가동이 멈추도록 하는 센서가 아예 없거나, 센서가 있더라도 작동하지 않도록 조치해 놓는 경우가 많다. 공장이 멈추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끼여서 2개, 3개 잘리는데도 공장이 계속 돌아가니 옆에 있던 근로자가 뛰어와서 기계를 세워야 한다. 밤에 혼자 일할 때는 옆에 동료가 없으니 더욱 위험하다.
-- 이주 노동자 본인들이 산재 신청을 꺼린다는데 왜 그런가.
▲ 서류를 작성해서 산재 신청을 하려고 할 때 당사자가 포기하는 사례가 나온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사장님이 싫어한다고 답변한다. 산재 신청은 사장의 동의가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포기하고 만다. 이런 모든 현상은 국회가 만들고 정부가 집행하고 사법부가 뒷받침하는 고용허가제에 근본 원인이 있다.
-- 고용주가 산재 신청에 부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 사고 자체가 고용 허가를 받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인력을 공급받는데 차질이 생길 것으로 그들은 우려하는 것이다. 산재 지정 병원은 이런 고용주들에게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야 고용주들이 사고당한 이주민들을 해당 병원으로 데려오기 때문이다.
-- 고용허가제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 국가가 만든 제도가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역할을 한다. 이 제도는 고용주와 이주노동자의 관계를 철저한 주종관계로 만든다. 이주노동자들이 비전문 취업비자(E-9)로 한국에 와서 3년 동안 무리 없이 성실하게 일하면 1년 10개월 연장할 기회를 준다. 이때 고용주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4년 10개월간 무리 없이 일하면 성실 근로자라고 해서 1개월간 출국했다가 다시 들어와서 일할 기회를 준다. 이때도 고용주의 사인이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을 연장하는 것인데, 결정적 키를 잡고 있는 것이 고용주다.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절대군주와 같은 존재가 되는 이유다. 그러니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을 부당하게 떼여도, 성폭력을 당해도, 산재를 당해도 고용주한테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 부당한 일을 당하면 사업장을 옮기면 되지 않나.
▲ 고용주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옮기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고용주의 사인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 부도, 현저한 체불 등 일부 경우에 한정한다. 성폭력을 당하면 고용주 허가 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있으나 본인이 입증해야 하므로 쉽지 않다. 내국인도 성폭력 사실을 문제 삼기가 어려운데, 한국의 언어와 법률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고용주의 성폭력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 근로기준법에 따라 하루 8시간 근무, 주당 하루 휴무, 야근과 주말 근무 150% 임금 적용 등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 근로기준법 63조에는 농축산업은 이 법률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195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농촌은 날씨 영향을 받는 자연 농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지금은 비닐하우스 등에서 일하고 있어 사실상 제조업 근무와 다르지 않다.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산업을 제외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정부와 지자체는 고용주들의 불법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것인가.
▲ 고용노동부에 불법 사실을 알리고 진정하면 인력이 없어서 단속할 수 없다고 한다. 지자체도 불법 건축물을 단속해야 하는데, 그대로 둔다. 예를 들어 정부는 지난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기숙사 등 불법 건축물을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고용주에 대해서는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2020년 말 태국인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한겨울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로 제공하고 20만∼30만 원 받는 고용주들이 수두룩하다. 거의 무료로 제공해도 시원치 않은 움막을 수십만 원의 돈을 받고 기숙사로 제공하는 것은 야만적 행위다. 이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조사해서 철거하는 일이 거의 없다. 고용노동부는 불법 기숙사에 기거하는 노동자들에게 한 달에 얼마씩 기숙사비를 받으라는 지침도 내줬던 기관이다.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관점에서는 우파적 정당이다. 이들 정당은 번갈아 집권하면서 자산 격차, 착취구조를 심화시켰다. 지구상에서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한국이 이주 노동자들에게 직장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정부와 지자체는 무슨 이익을 얻기 위해 불법을 방치하나.
▲ 철저하게 사업주 편에 서는 것이라고 본다. 사업주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피라미드는 독점기업-정규직-비정규직-이주노동자로 돼 있다. 맨 밑바닥이 이주노동자이다. 이들의 저임금이 한국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낙수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이 이미 입증된 상태다. 이주민 노동자들은 농축산업이나 제조업의 고용주와 달리 투표권을 갖고 있지 않으니 권력 획득에 도움이 안 된다고 계산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 농축산업의 경우 영세해서 정부가 묵인해주는 것 아닌가.
▲ 고용주 농장은 비닐하우스 50∼100개 정도가 한 단위다. 비닐하우스는 대체로 폭이 6∼7m, 길이는 100여m 정도 된다. 이곳에서 사철 농사를 짓는데 매출이 연간 10억 원 안팎이라고 한다. 웬만한 중소기업체 규모다. 이주민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포천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사고를 당한 이주노동자의 산재 신청을 외면하면서 자신은 에쿠스, 벤츠, BMW, 포드 등 4개의 자동차를 굴린다. 골프하러 필리핀에도 자주 간다. 이주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이용해 치부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꽤 많다.
--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고용허가제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사업주와 이주 노동자 관계를 주종 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시장원리가 작동해서 경제가 건강해진다. 1년에 한 번씩은 이주노동자 본인이 사업장을 선택해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4년 10개월짜리 비자를 주고, 처음 1년은 계약 사업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4년 10개월 정도 일한 사람한테는 영주권을 신청할 기회를 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앞으로 이주노동자를 위해 어떤 사업을 벌일 계획인가.
▲ 이주노동자들의 노조를 만드는 쪽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현재 이주노동자 노조 중앙조직은 만들어졌는데. 10년 정도 걸렸다. 문제는 노동 현장에 일선 단위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조직이 만들어지면 근로조건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면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풀릴 수 있다. 우리 밥상에 올라가는 채소, 생선, 육류 등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는 부분이 꽤 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들에는 이주노동자의 피와 땀이 스며있다. 그들을 더불어 사는 주민이라고 생각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취재지원 이건희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