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강우석 '아시아서 맹위 떨치는 한국영화'
기사입력 2000년 04월 17일 14시 55분
여기는 홍콩.
나는 칼럼 원고 마감 시한에 쫓기면서, 홍콩에서 칼럼을 쓰고 있다.
지금 홍콩에선 장윤현 감독의 `텔미 썸딩'이 3주째 상영중인데, 여전히 손님이 많이 들고 있다. 홍콩에 오기 직전, 도쿄에 들렀을 때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계속 손님몰이를 하고 있더니…정말 가는 곳마다 한국영화가 잘돼 나도 괜히 어깨가 우쭐해 진다.
내가 도쿄에 갔던 것은 `텔미 썸딩'과 `주유소 습격사건'의 일본 개봉건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텔미 썸딩'은 7월에, `주유소 습격사건'은 10월에 일본에서 개봉하기로 했다.
나는 일본 영화인들과 만나는 동안,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려는 그들 특유의 상술도 보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한국에서 장사될 만한 일본영화를 구입하기 위해 국내 영화업자들이 일본을 왔다갔다 한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반대로 우리가 큰소리치며 일본으로 영화를 팔게 됐으니 말이다. 내가 만난 일본 영화인중엔 자국영화보다도 한국영화가 더 흥행이 잘 될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같은 인식의 변화가 있기까지엔 `쉬리'의 영향이 컸다.
할리우드 대작들을 수입해온 일본의 가가 커뮤니케이션즈는 한국담당 직원 2명을 별도로 두고, 이들이 한국에서 개봉되는 영화를 서울에서 1회 관객들과 섞여서 보게 할 정도다.
도쿄를 거쳐 홍콩에 온 것은 내가 대표로 있는 (주)시네마서비스에 투자를 한 `워버그 핀커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여기 와보니까 나말고도 한국영화인들이 많이 와 있다. 홍콩포럼이란 것이 있어 아시아의 프로듀서들이 연대 또는 합작 등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중.
사실 이곳에 온 한국영화인들이 국내에서 제작비를 조달 못해서 홍콩까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이들은 보다 큰 시장을 찾기 위해 홍콩으로 날아온 것이다. 반면에 칸이나 베니스 등에서 명성을 날린 중국 감독들이 제작비 조달을 못해 쩔쩔 매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일본이나 홍콩영화를 보면서 부러워한 게 불과 얼마전인데, 요즘엔 한국영화의 기세가 더 등등하다. 홍콩영화는 홍콩반환을 즈음해 스타감독과 배우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아직도 허전한 감을 지울 수 없고, 일본영화는 국제영화제 등에선 예술성을 평가받고 있지만 자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 감독들은 관객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데 진솔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잘 나갈 때 잘 해야 하는 법. 우리 영화를 사가겠다는 외국인들이 많을 때, 그들을 만족시켜줄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 관객이 우리 영화를 사랑할 때, 그들이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면, 한국영화는 모처럼만에 찾아온 호기를 놓치고 위기를 맞을 지도 모른다.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한국영화는 보다 경쟁력을 키우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P.S]누가 홍콩의 야경이 아름답다 했는가? 도쿄에서 미뤘던 칼럼을 홍콩에서 머리를 쥐어짜면서 해결해야 했기에, 내눈엔 통 야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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