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제3국인 표현과 의미
기사입력 2000년 04월 17일 14시 55분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당시 조선인들은 무차별 떼죽음을 당했다. 왜냐하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인들이 지어 낸 말이었다. 이 때문에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대와 경찰, 자경단에 의해서 무참하게 학살됐다. 조선인만 만나면 무조건 닥치는 대로 죽창과 칼로 찔러 무려 6천여명의 조선인이 떼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이것도 `축소지향적인' 일본인이 발표한 최소한의 숫자일뿐이다. 당시를 살았던 재일학자들에 의하면 희생자수는 그 몇 배를 넘을 것이라고 폭로했다. 당시 일본인 또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일본인 희생자의 대부분은 지방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었는데 그것은 사투리 때문이었다. 일본말을 시켜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별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당시 아무리 일본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조선인들의 발음은 어딘가 틀리기 마련. 그래서 누구라도 조선인이라는 의심이 들면 일본말을 시켜봐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때문에 정확한 표준일본어를 배우지 못하고 시골에서 사투리를 사용했던 일본인들은 졸지에 조선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어갔다. 물론 일본희생자 중에서는 목숨을 걸고 조선인을 숨겨주다 살해된 이도 적지 않았다.
몇 년 전 나는, 일본인으로 귀화했지만 프로골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재일동포 2세인 아오키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물었었다. 어떤 동기에서 귀화를 했느냐고. 그러자 그가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일본 식민지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아주 나쁜 일본인과 정말 좋은 일본인, 이 두 가지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지요. 제가 구태여 아오키라는 일본이름을 가지고 귀화를 한 것은 아오키라는 일본인이 부모님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관동대지진 때 그의 부모를 구해 준 것이었다.
"관동대지진이 났을 때 목숨을 걸고 부모님들을 지켜줬습니다. 당시 조선인들을 찾아 죽이기 위해 일본인들이 혈안이 돼 있을 때 아오키씨가 자신의 집 벽장 속에 우리 부모를 숨겨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마추어 선수에서 프로골퍼로 전향할 때, 외국인은 세금을 많이 내야 했으므로 일본인으로 귀화하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부모의 생명을 지켜준 아오키씨의 이름으로 하자고 했던 것이죠."
아무튼 이시하라 도지사의 `제 3국인'발언은 이같은 경험이 있는 재일동포로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말임에 틀림없다. 특히 이시하라는 지난 94년 LA에서 일어났던 지진 당시 혹인과 히스패닉계 폭동의 예를 들었지만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적어도 이 때 이시하라가 말하듯 대약탈 같은 심각한 난동은 없었다. 다만 92년 재미교포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인종간의 대폭동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무식한' 이시하라는 12일자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LA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흑인과 히스패닉계들이 강도를 했지요. 이같은 일은 일본에서도 꼭 일어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94년 LA지진 때는 이시하라의 주장처럼 경찰아닌 군대를 동원할 만큼 큰 약탈이나 난동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 `무식한' 도쿄 도지사는 정확한 사실을 알지도 못한 주제에 `지진이 일어나면 제 3국인들의 폭동이 일어난다'고 했던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예로 들면서 외국인들을 싸잡아 폭동자로 몰아부친 것이다.
좀 더 직선적으로 표현하자면 1923년 관동대지진처럼 자연재해를 조선인탓으로 돌려 무차별 학살한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과 이시하라의 인식이 결코 다르지 않다.
관동대지진 때도 공격의 화살은 바로 조선인을 향해 있었고 이시하라의 `제 3국인' 발언도 역시 재일한국인들을 겨냥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불법체류자 외국인의 대다수가 사실은 바로 우리 한국인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