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진 '하모니-인내의 국회 거듭나라'
기사입력 2000년 04월 16일 15시 14분
얼마전 끝난 선거의 투표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투표율이 저하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번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에서도 역시 신뢰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에 당선된 국회의원들에게 연극인의 한사람으로서 당부의 말을 하자면, 어차피 함께 가야할 길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숙한 의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나라는 다름 아닌 영국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수백년 피의 역사를 이겨내고 최고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영국정치의 이면에는 역사깊은 연극교육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회가 자신의 의견을 조리있게 설명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성숙한 대화의 장이 될 수 있기 까지는 쌍방 커뮤니케이션과 동일한 목표를 향한 협동정신이 밑받침된 연극문화가 단단히 한몫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조리있고 고급스러운 언변으로 자신의 생각을 개진한다는 것은 것은 상당한 에너지 소모와 집중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런 인성교육은 어릴 적부터 지속적으로 몸에 배게 훈련을 해야만 한다.
이런 교육을 위한 가장 좋은 재료가 바로 연극이다. 영국의 교육과정에는 연극이 필수과정으로 들어있다. 미국의 경우도 대학 학부과정에 매학기 읽어야 하는 희곡편수가 수십권에 이른다.
물론 우리 의회의 미성숙함을 단순하게 연극교육의 부재에 돌리기는 뭣하지만, 서로 멱살잡고, 욕설을 퍼붓는 것부터 시작해 남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난장판' 한국 국회의 모습은 분명 우리 사회의 성숙치 못한 민주주의와 인성교육 수준을 대변해 준다.
작가 아돌프 가드의 `주인 매스터 헤럴드와 그의 하인들'이라는 작품을 보면 조화를 이뤄가는 민주주의의 모습을 예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인종차별로 핍박받던 두 흑인하인이 스트레스도 풀 겸, 비밀리에 사교댄스 페스티벌에 출전하기로 결심하고 연습에 들어간다.
그러나 생각대로 춤 실력이 늘지 않자, 한 흑인이 포기하자고 제안을 하게 된다. 그때 나머지 흑인이 이런 멋진 말을 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는 인내를 갖고 끊임없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 넓은 무도회장에서, 서로 발을 맞춰가며, 부딪히지 않고 함께 춤을 즐기는 그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당연히 오랜 인내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서 좌절하면 우린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랜 연습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리는 연극도 마찬가지다. 초기엔 서로 제 각각인 배우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관객들을 감동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이 덜 된 작품은 관객을 실망시키는 법이다.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멋진 하모니를 이루는 인내의 국회로 거듭나길 부디 당부한다.
[연극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