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도약 (3)
기사입력 2000년 04월 14일 15시 27분
극동전자는 수출과 내수의 비율이 작년에 7대 3까지 되어서 오히려 외국에서 더 인정을 받는 회사라고 볼 수 있었다.
OEM방식이 아닌 전량 자체 브랜드인 `극동' 이름으로 수출해온 터여서 한국 경제는 물론이고 한국의 국가 신인도에도 크게 공헌해온 것이다.
극동의 작년 매출 총액은 7000억원이었지만 올해의 계획은 8500억이었다. 약 20% 정도의 성장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업체의 도전과 외국의 규제, 그리고 경제상황의 급변으로 목표 달성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졌다.
본래 이 목표도 영업부의 각 팀에서 기안해 올린 것을 부 단위에서 정리하고 경영진에 제출토록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지만 대개 거꾸로 경영진이 기획, 영업, 자금부의 고위층과 협의를 거친 다음 은밀히 영업부로 목표를 내려보내어 조정토록 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전망과 실적이 좋은 팀이라도 내년도의 목표를 기안해 내라면 갖은 엄살과 핑계를 대며 목표를 낮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부장이나 이사의 설득과 회유에 깜박 넘어갔다가 일년 내내 팀원들의 원망을 받으며 실적 미달로 밀려나는 팀장도 여럿이었던 것이다.
연말에 목표대비 실적을 평가하여 천국과 지옥을 구경해야 하는 팀단위 조직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이대진도 작년에 내부 목표를 4000만달러로 팀원끼리 은밀하게 합의했지만 회사에는 2800만 달러로 제출했다.
그러자 고위층의 목표에 대해 심의위원회보다 먼저 6부의 나머지 3개 팀들이 들고 일어섰다. 6부의 잠정 목표가 1억 달러가량 되었기 때문에 특수팀이 목표를 줄이면 그들이 차액을 뒤집어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장을 중심으로 4개 팀장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유를 막론하고 목표를 줄여야 팀원들로부터 유능한 팀장 소리를 듣는 것이다. 더우기 그때의 6부장 최정호는 목표 심의의원회의 설득으로 1500만 달러 정도를 다른 부에 비교해서 더 받아왔기 때문에 팀장들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고 있던 터였다.
결국 이대진은 3050만 달러로 팀 목표를 조정하여 합의했는데 수준작은 되었다.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3팀장은 내부 목표를 2500달러로 세운다음 최정호의 기세에 눌려 목표를 2100달러로 제출했다가 2350달러로 최종 확정되었다.
그가 팀원들로부터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년 내내 뼈빠지게 일해도 목숨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각 팀은 비상금처럼 히든 카드로 내놓을 바이어를 한두명씩 숨겨두고 있었는데 그런면에서는 지금 6부장이 된 조재철이 뛰어났다. 그는 멀쩡한 바이어를 대단히 위험한 불량 거래선으로 보고하여 숨겨두었다가 나중에 내놓았고 어떤 때는 바이어로부터 시장이 어려우니 목표를 줄여야겠다는 거짓말까지 시켰다.
그런 그인지라 이대진이 시치미를 떼고 있어도 속셈의 반은 읽는다고 자부하는 모양이었다. 이대진이 앞자리에 앉았을 때 그가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오전 10시경이었다.
"오늘 부장회의 때 백실장의 분위기가 괜찮던데. 이상하단 말이야."
"그래요? 머, 집안에 좋은 일이 있는거겠지요."
이대진이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럴리가 없어. 난 오늘 내가 네 대신으로 씹힐 작정을 단단히 하고 나왔단 말이다. 그런데 날 보고 웃기까지했어."
"그 넥타이 무늬 때문일 겁니다."
정색한 이대진이 턱으로 조재철의 넥타이를 가리켰다.
"웬 하트 무늬입니까? 그것도 온통."
[계속]
